오랫동안 신비 컨셉을 유지했던 블로그여서 쥔장에 대한 의문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 블로그의 쥔장에 대해 이 글에서 밝히려고 합니다. 그냥 제 소개를 하려니까 좀 뻘쭘해서 인터뷰 형식으로 글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음..... 셀프 인터뷰 글이 되겠네요. ㅋㅋㅋ


  

본인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조앙 박 소현 입니다. 조앙은 포르투갈어이고 스페인어 이름으로는 후안이라고 하죠. 영어의 존(John)과 같은 의미인데, 알파벳을 사용하는 지역에서는 아주 흔한 이름입니다. 한국식 이름은 탤런트 박 소현과 똑 같습니다. 성별만 다르죠. ㅎㅎㅎ


이름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도 많겠네요?

      그렇지요. 많은 분들이 제가 여자인줄 압니다. 만나보기 전에는 별별 상상들을 다 하시죠. 만나보시고는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ㅋㅋㅋ;; 아내와 함께 사용하는 명함을 받아보고는 집사람이 박 소현인줄 알고 이름이 예쁘다고 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대신에, 한번 들으시면 대부분 잘 안 잊으시더군요. ㅎㅎㅎ



스페인어 이름은 어떻게 갖게 되었습니까?

  처음 이민을 왔을 때, 아순시온에 있던 파라과이 주재 멕시코 영사 자제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자제들중의 하나가 제 이름을 후안으로 하면 어떻겠냐고 했는데, 그게 시작이 되어서 결국 지금까지 후안, 혹은 조앙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들어보니 자신의 이름에 조금 불만이 있는 듯 하네요?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까, 후안이라는 이름이 너무 평범해요. 주변의 한국인들 이름은 프란시스코, 알베르토, 레오나르도 뭐 좀 멋진 이름도 많은데 하필 후안이 뭘까 하는 생각에 이름을 바꿀 생각을 몇 번 했는데, 결국 다시 후안이 되었습니다. 제일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하고, 지금은 바꿀 엄두를 못 내겠네요. ㅎㅎㅎ


앞에 질문에 대한 대답 가운데 피아노를 언급하셨는데요?

        , 피아노는 어렸을 적에 조금 쳤습니다. 지금은 안친지 거의 30여년이 되어 가네요. 그래서 잘 모릅니다만, 한창 때에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전주곡을 칠 정도까지 배웠습니다. 멕시코 영사를 만나게 된 것도, 아순시온에서 피아노 연주를 한 기회로 만나게 되었지요.


지금 나이는 어떻게 되시나요?

        1967년 생이니까 지금 만으로 47세네요. 한국 나이로는 48 입니다. ~ 50이군요. ^^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십니까?

        1997년에 결혼해서 아내와 둘이서 살고 있습니다. 자녀는 갖지 않았습니다. 좀 더 넓은 의미에서의 가족, 그러니까 본가쪽은 어머니와 세 형제가 있고, 두 형수님들, 제수씨, 그리고 6명의 조카들이 모두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살고 계십니다. 처가쪽으로는 두 분 부모님과 큰 처남댁 5명이 상파울로에, 둘째 세째 처남 가족 총 9명이 이과수에 살고 있구요. 그리고 처제와 그 가족 5명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살고 있습니다.


이민 오신지가 상당히 된 것으로 압니다. 국적은 어떻게 되십니까?

        아직까지 한국인 입니다. 국적을 변경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거 같습니다.


남미에서의 생활을 살펴보지요. 이민은 언제 나오셨나요?

       1984년에 어머니를 따라 형들과 동생과 함께 나왔습니다. 파라과이로 갔는데, 1년 뒤에 가족과 재화를 하신 아버지가 기후에 적응을 잘 못하시더군요. 그래서 아버지가 오신 후로, 3국으로의 재 이민을 추진했습니다. 그래서 1986년부터 아르헨티나에서 살다가 2001년부터 아내와 함께 브라질에서 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계기로 이민을 나왔습니까?

        어떤 계기랄게 없죠. 그냥 부모님이 결정하셨고, 미성년자였던 저로서야 그냥 부모님을 따를 수 밖에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서 보니 당시 이민을 나왔던 것이 좋았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가지 면에서요. 나중에 그 점에 대해 정리해서 포스트할 기회가 생기겠죠. ㅎㅎ


       지금까지 어떤 도시에서 살았습니까?

  이민 오기 전에는 서울에서 살았구요. ㅎㅎㅎ;; 이민을 처음 온 곳이 아순시온 이었습니다. 파라과이의 수도인데, 수도라고 하지만 아무튼 작은 도시입니다. 그 다음에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가서 15년 정도 살았구요. 그곳은 주변 위성 도시들까지 합쳐서 인구가 1000만 명이 넘는 곳입니다. 그 다음에 브라질의 꾸리찌바에서 3, 상파울로에서 4, 포즈 두 이과수에서 6년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 이곳 포르탈레자에서 1년 정도를 살고 있습니다.


이과수에서 살 때는 주변에 자연이 많아 아주 좋았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도시는 어디인가요?

  살아보았던, 그리고 돌아다니며 만났던 도시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도시는 포즈 두 이과수입니다. 공기도 좋았고, 이웃들도 좋았고, 물도 좋았고, 신기하고 재밌는 것도 많았던 곳입니다. 도시가 자그마하면서도 있을 건 다 있었으니까요. 지금도 가장 살고 싶은 그리운 곳입니다.


 이제 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어떤 신앙을 가지고 계시는지요?

        여호와의 증인 입니다. 한국에서 1983년에 여호와의 증인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32년째 여호와의 증인 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네요.


가끔 이렇게 큰 대회장에서 연설도 합니다. ^^


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역시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하고 있는 활동입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조만간 이 세상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믿고 있죠. 그래서 선량한 사람들이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전파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하느님의 왕국을 전파하는 일이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사람들을 도와 성서로 부터 유익을 얻도록 하는 것이 제겐 큰 보람이죠.


포르탈레자에는 어떻게 오게 되었습니까?

        2013년 초에 포르탈레자에서 2달간 특별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때 포르탈레자에 한국인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런데 6월 경에, 여호와의 증인 협회로부터 점증하는 포르탈레자의 한국인들에게 증거하는 일을 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곳으로 이주하게 되었지요.


그럼, 선교사로 오게 된 것입니까?

        말하자면 그런셈인데, 여호와의 증인들은 전파사업에 대한 월급을 받지 않습니다. 제 경우에는 모든 비용을 제가 충당해야 하죠. 그래서 포르탈레자로 오게 된 것이 어떤 명령으로 온 것이 아니라, 제가 자원해서 오게 되었습니다. 그 점이 일반 교회의 선교사들하고는 좀 다른 경우라고 할 수 있겠지요.


지금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현재 열심히 전파 사업을 합니다. ^^;; 또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집사람과 이런 저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일도 하구요. 또 이 지역에 있는 협력 업체들의 이런 저런 서류들을 포르투갈어에서 한국어로 번역해주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쎄아라 주 주립 대학교에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국어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학교에서 브라질 학생들을 상대로 한국어를 가르칩니다


수업을 듣고 있는 애들이 저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죠? ㅎㅎㅎ


      여행을 많이 하는데 어떤 이유에서 입니까?

        오랫동안 남미에서 살다 보니 여기 저기 친구들이 많습니다. 한국인도 있고 현지인도 있고요. 그 친구들을 방문하기 위해서 여기 저기 여행을 하기도 하구요. 또 큰 도시들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 회중들을 방문해서 연설도 합니다. 그 외에도 기회가 되는대로 새로운 곳에도 찾아다니면서 풍경을 즐기기도 합니다.


자동차를 개조해서, 남미를 반 바퀴 돌았습니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이 있다면요?

  2003년에 아내와 둘이서 자동차를 가지고 브라질 꾸리찌바에서 출발해서, 아르헨티나로, 또 칠레로, 볼리비아로 한 바퀴 돌아서 온 적이 있습니다. 18000km 거리를 여행했는데, 아마 앞으로도 한 동안은 그런 여행은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게 제일 기억에 남네요.


2003년 파타고니아의 에스껠 이란 곳 인근에서 찍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당분간은 포르탈레자에 있을 생각입니다. 포르탈레자의 한국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구요. 어떤 의미든지요. 어렵고 힘들게 이곳에 계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는 성경의 말씀을 들려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후의 일은 그 다음에 생각해 봐야죠. ^^


인터뷰 말미의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이 인터뷰를 작성하게 된 이유는, 많은 분들이 저와 제 활동에 대해 궁금하게 생각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왜 그렇게 많은 여행을 하는지, 또 어떻게 저렇게 이리 저리 이사를 다니면서 살고 있는지, 또 뭘 먹고 사는 사람인지 등등그래서 저를 밝히고 저에 대해 알리려는 생각에서 인터뷰를 작성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 스토리를 찾아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언제나처럼 이 블로그에서 좋은 정보를 찾으실 수 있기를 바라구요. 그동안, 블로그 생활에 뜸했던 관계로, 개인적으로 메일을 보내 주시는 분들에게도 답장을 안했습니다만, 앞으로는 가능하면 정성껏 대답해 드리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계속 라틴 아메리카 스토리를 사랑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모두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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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an 의 라틴 아메리카 이야기
이 블로그는 이과수 이야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에 더해서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가지 이야기를 담게 되었습니다. 남미는 더이상 신비의 땅이 아닙니다. 하지만 여전히 정보가 부족합니다. 이 방에서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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