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까따마르까로 내려가는 길은 구비구비 계곡을끼고 정말 멋진 풍경의 길이었습니다. 역시 큰 형님은 여름에 이 길을 와야 하는데... 라시며 푸념을 하셨는데, 겨울에 이 정도 경치라면 여름은 정말 멋질 거라는 생각에 동감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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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급 커브가 정말 무지무지 많더군요. 큰 형의 말로는 평생 돌릴 핸들을 여기서 다 돌린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 정도로 커브가 많았습니다. 한쪽으로는 낭떨어지인데도 그리 위험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도로가 좋았고, 또 주변의 경치를 보느라 아슬아슬한 부분을 느낄 틈이 없었습니다.



경사도 경사고, 커브도 커브였습니다. 이어지는 도로의 풍경을 좀 보시기 바랍니다. 중간에 전망대에 잠깐 서서 계곡을 바라보기도 했지만, 주로 도로의 풍경이 이어집니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다가 도시가 나올 때가 되었는데, 도로를 달리는 차들이 모두 서 있습니다. 왠 일인가 알아보니 시위대가 국도를 막았다고 하네요. 근데 이 시위대라는 사람들이 하필 다리 앞에서 길을 막았습니다. 여기서 돌아가야 하나요? 알아보다가 도시로 들어가서 비포장 도로로 돌아다니다 다리를 지나서 계속 전진을 합니다.



그렇게 들어간 한 도시의 광장에는 1980년대부터 2000년까지 아르헨티나에서 보았던 모든 중고차는 다 모여있는 듯 합니다. 레나울트 11, 12, 18, Torino와 푸조 504, 405, 404 게다가 포드 Falcon도 있네요. 정말 대단한 중고 자동차 골동품점입니다. ^^



그런데 이렇게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는 한 두 군데가 아니었습니다. 자그마치 세 군데서나 도로를 막았더군요. 게다가 하필 도로를 막은 곳은 하나같이 다리 앞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튼 까따마르까로 가기 위해서 비포장 도로는 물론 진흙탕까지 다리를 건너기 위해 이상한 곳들로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이런 길로 다녔습니다. 이해가 되시지요?



그래도 막판에는 좋은 도로에서 경치 좋은 곳으로 다닐 수 있었습니다. 한 산을 지나가면서 큰 형님은 이곳이 얼마전 아르헨티나 정부를 대항해 게릴라전을 펼치던 반군들의 소굴이었다고 설명해 줍니다. 확실히 박식한 분이시지요?



까따마르까가 가까워 질 무렵에 멀리 산자루를 보면서 산마루에 있는 국도 이야기를 해 줍니다.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있는 국도인데, 포장이 안 되어있는 정도가 아니라 잔디밭이 도로라고 하네요. 그리로 올라가는 길을 보니 정말 까마득합니다. 다음 사진을 보시면 그 길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저 길로 한번 가보고 싶다는 호승심 혹은 호기심이 일었지만,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니기에 그냥 지나치기로 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잔디밭 국도는 어떤지 한번 가 볼 계획을 세워 볼랍니다. ^^




그렇게 그렇게 까따마르까 시내로 들어갑니다. 사실 볼게 별로 없는 도시입니다. 도시도 자그마하고 그냥 그저 그렇습니다. 까따마르까에 좀 특산품은 뭐가 있을까요? 큰 형님은 이곳이 올리브의 집산지라고 설명해 주십니다. 또한 이곳에서 독사의 독을 해독하는 약품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둘 다 경치와는 관련이 없는 것이니 특별히 보여 드릴게 없네요.



까따마르까를 지나쳐 라리오하로 갑니다. 가는 길에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여행이 종반으로 향해 가는군요. ㅎㅎㅎ



라 리오하는 얼마전에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지냈던 사울 메넴의 고향입니다. 물론 라 리오하 시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구요. 메넴은 라 리오하의 주지사를 지내다가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친한파로 알려진 메넴은 현재 부정부패혐의로 이런 저런 안 좋은 일로 연루가 되어 있습니다. 대통령을 낸 곳이라서 그럴까요? 20여년 전에 이곳을 왔을 때는 정말 촌 동네였었는데, 지금은 좀 활기를 띈게 그런대로 괜찮아 보입니다. 일단 저녁을 지내고 낼 아침에 한번 봐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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낄메스 인디오 유적지를 떠나 까따마르까로 방향을 잡고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중간에 따피 델 바제라는 곳을 지나 점심을 먹기로 하고 말입니다. 낄메스 유적지를 지나 조금 달려가자 깔차끼 계곡쪽으로 다시 풍경이 변합니다. 또 아마이차 델 바제라는 마을을 지나면서부터는 깔차끼 계곡속의 산을 넘어가기 위해 오르막길이 시작되었습니다. 중간정도에 전망대가 있어서 잠깐 내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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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차끼 계곡 속에 있는 마을의 전경입니다. 저 뒤편으로 깔차끼 계곡의 높은 산봉우리들이 보이는군요. 가슴속이 탁 트여지는 듯한 전경에 모두들 넋을 잃고 한동안 관람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인적이 드문 곳이기는 하지만, 여기 저기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큰 형님이 이야기를 하십니다. 저희들 눈에는 별로 뜨이지 않지만, 집에서 기르는 가축들인 양, 염소, 야마, 말, 소떼가 있다는 것은 그 말씀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가끔씩 마주치게 되는 집들에는 어김없이 태양열 전지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위성 TV 안테나까지 달려 있습니다. 이들 인디오와 비슷한 삶을 가꾸어가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런 고가의 장비가 있을까요? 해답은 정부에 있었습니다. 이들은 선거때 자신들의 증명을 가지고 이런 혜택을 받는 모양입니다. 기브앤테이크로 말입니다.



산골짜기의 응달이 있는 곳은 역시 추운가 봅니다. 밤새 얼어있던 계곡의 개울물이 조르르 흐르는 소리가 있었는데, 응달쪽에는 어김없이 얼음이 얼어 있었습니다. 파라과이에서 온 친구들이나 이과수에서 온 저는 사실 길가에 이런 얼음이 얼어 있는 모습이 아주 생소합니다. 그래서 아르헨티나에 사시는 친구들과 형님 세분은 그냥 차에 앉아 계시는데, 저희들은 계곡으로 달려가서 얼음도 만져보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아마 차 안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오고 갔겠지요?



"아무튼 촌놈들은 달라~" ㅎㅎㅎ



따피 델 바제로 넘어가는 길에서 만난 도로 보수반원들입니다. 이곳까지 중장비를 가져오는 것이 힘들어서겠지요? 롤러차 같은 것은 없고, 그냥 구멍 난 곳에 아스팔트를 채워 넣는 것으로 수리가 끝 인 모양입니다. 아무튼 그렇게라도 해서 보수를 해 주니 저희들 입장에서는 아주 고맙지요. ^^



따피 델 바제로 넘어가는 곳에 위치한 고지입니다. 해발 3042 미터군요. 까파자떼가 해발 1700미터, 낄메스 인디오 유적지가 해발 2000미터였는데, 여기까지 1000미터를 더 올라온 모양입니다. 이제는 내려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나머지 일정에는 해발 3000미터 이상 올라갈 일은 없을 것입니다. 고원 지대는 이제 끝이군요. ㅎㅎㅎ



따피 델 바제는 뚜꾸만의 부자들이 소유한 별장들이 즐비한 곳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산지의 풍경이 아주 멋있었습니다. 겨울이라 좀 침침하기는 하지만, 여름에 이곳에 오면 경치가 죽인다고 합니다. 멀리 호수와 그 주변에 어우러진 촌락의 모습은 가슴을 시원하게 해 줍니다. 내려가면서 찍은 사진을 좀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따피 델 바제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12시가 넘었네요. 식사를 하기로 했던 곳까지 가려면 좀 더 가야 하는데, 아무래도 무엇인가를 먹고 가야겠다는 큰 형님의 말씀이 있어서 길을 내려가면서 첫번째로 보이는 주유소로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이 지역은 이제 많이 개발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여행자들을 위한 까바냐 역시 상당히 많이 만들어져 있더군요. 나중에 몇 년 후에 이 지역으로 놀러 온다면, 새로운 까바냐에서 멋진 저녁을 보낼 수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현재도 많은 까바냐들이 들어서 있기는 합니다.



처음 눈에 띄는 주유소입니다. 이곳에서 잠시 정차를 하고 간식을 먹는다는 것이 그냥 점심을 먹고 말았습니다. 잠시 후에 보여드리죠. 이곳 주유소의 화장실은 잘 보시고 들어가야 합니다. 남녀 표지판이 바깥과 안쪽이 다릅니다. 바깥의 표지판만 보고 들어갔다가는 남자는 여자 화장실로, 여자는 남자 화장실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도 몇 명이 그렇게 실수할 뻔 했습니다.





주유소 뒤에서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계곡을 따라 차갑지만 아주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냇물 가로 소떼와 염소, 양떼가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안 쪽으로 야마들이 우리에 갇혀 있었습니다. 야마처럼 목이 긴 낙타과 동물들은 성질나면 산이 든 침을 뱉는 성질이 있습니다. 따라서 너무 가깝게 가서 신경쓰이게 하면 안 됩니다.




주유소에 딸린 가게의 모습입니다. 출출하셨던지, 큰 형님은 이곳에서 아르헨티나 고유 음식 중 하나인 로끄로를 주문하셨습니다. 그 사이 여행의 동료들은 여기 저기 가게 안팎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저도 역시 사진기를 들고 있었기에, 이것 저것을 찍어 봅니다.



이건 복숭아 말린 것입니다. 안데스 너머 칠레쪽의 아이마라 인디오들은 이것과 율무를 넣어 끓여서 식한 음료를 마십니다. 여기서는 말린 복숭아를 어떻게 먹는지 모르겠습니다. 주인 아주머니는 차를 만들어 먹거나 물에 불려서 먹는다고 설명하는데, 맛있는 복숭아를 왜 이렇게 말리는 걸까요? 대답은 보관입니다. 이 지역에서는, 아니 안데스의 거의 모든 인디오 문명은 곡식이나 과일, 야채를 말려서 보관합니다. 오랫동안 식품을 먹기 위해 고안한 그들만의 방법인 것입니다.



지역이 지역이다보니 양털로 만든, 그리고 야마털로 만든 각종 실과 공예품이 있습니다. 아무튼 잠깐 둘러보았더니 더 볼게 없네요. 저도 식탁에 앉아 앞에 놓인 치즈 조각을 입에 넣어 봅니다.



뒤쪽의 살라메는 야마 고기 살라메입니다. 앞쪽의 흰 치즈 역시 야마 젖으로 만든 치즈입니다. 뒤쪽의 누런 치즈는 소젖 치즈입니다. 흰 치즈는 맛이 좀 새콤했습니다. 그걸보면, 야마는 침 속에만 산이 있는게 아닌 모양입니다. 젖 속에도 산이 들어간 모양입니다.



확실히 야마를 많이 먹는 모양입니다. 식당 한 편으로 야마 국 혹은 탕을 주문하라는 광고판이 있었습니다. 또 위의 꼬르데로는 양고기 탕입니다. 우리는 이것들 중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고, 대신 로끄로를 기다렸습니다. 로끄로가 뭔지 무지 궁금하지요? 



빵과 함께 먹으라고 나온 파테인데요. 왼쪽은 고추과의 식물로 만든 가루입니다. 입에 넣어보니 매큼한 맛이 느껴집니다. 아주 아주 매운 편은 아니고, 그냥 매큼합니다. 오른쪽은 기름에 절인 채소인데, 구수한 맛이 나오더군요. 그렇게 화기 애애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주문했던 로끄로가 나옵니다.



로끄로는 옥수수로 만든 죽입니다. 하지만 옥수수 뿐 아니라 고기 - 여기서는 야마 혹은 양고기 - 와 함께 젖도 좀 들어가는데, 구수하고 영양가가 풍부한 서민 음식입니다. 조그만 그릇에 담겨 나올 줄 알았는데, 확실히 시골 인심은 대단하네요. 한그릇씩을 먹었더니 점심 식사가 해결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까따마르까 시를 향해 출발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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낄메스 Quilmes 이야기라고 하니까 아마도 아르헨티나 맥주 낄메스 Cerveza Quilmes 를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낄메스는 맥주가 아니라 인디오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낄메스 인디오들, 들어는 보셨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현재 부에노스 아이레스 남쪽에 있는 낄메스 지역의 인디오들인가?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 지역에 인디오들이 있기는 했습니다만, 지금 이야기를 하는 낄메스 인디오들은 아르헨티나 북서쪽 살타 주와 뚜꾸만 주 경계 부근에 살았던 낄메스 인디오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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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어떻게 낄메스 인디오들의 폐허와 마주치게 되었는지를 말씀드리죠. 여행이 종반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다섯째 날 아침이 밝자마자 까파자떼에서 일어나 아침 식사를 하고 나서 남쪽으로 뚜꾸만으로 갔습니다. 아직 아침의 햇살이 비취고 있던 시간, 바깥 온도는 영하 2도를 가리키고 있었지요. 까파자떼로부터 뚜꾸만의 경계 부근까지는 모두 포도밭이었습니다.



황무지처럼 보이는 곳들을 개간해서 포도 농장을 세운 모습은 경제에 눈을 뜬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이전의 황무지가 이제는 포도 농장으로, 그리고 미래에는 포도주 생산지로 탈바꿈을 하게 될 것입니다.



뚜꾸만 주에 들어서서 처음 만나는 곳에 낄메스 인디오들의 유적지에 대한 간판이 서 있었습니다. 돈을 받고 입장을 시키는 관광/유적지의 간판치고는 엉성하기만 한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냥 인디오들의 것이겠거니 하면서 지나치기에는 또 뭐한것이... 아래 있는 ciudadsagradaquilmes@hotmail.com 이라는 이 메일 주소였습니다. 현대 사회를 철저하게 배척한 것도 아니면서 간판은 19세기 모습을 보는 기분이었으니 말입니다.



유적지로 통하는 길은 비포장이었지만 좋았습니다. 아침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전 근대적인 유적지와는 아주 잘 매치가 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런 비포장 도로고 1킬로미터 정도를 갔을 때, 추위에 손을 비비며 한 인디오의 후손이 나타났습니다. 보아하니 이곳이 유적지의 입구인 모양입니다. 1인당 10 페소의 입장료를 받았습니다.



제 손에 쥔 것이 입장권입니다. 인쇄된 입장권은 또 최첨단 인쇄술을 사용했네요. ㅎㅎㅎ



입구 부근에 서 있는 기념비입니다. 2008년에 만들어진 모양이네요. 당연히 1990년대 초반에 이곳에 왔던 저는 낄메스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못한게 당연해 보입니다.



낄메스 인디오들의 유적지입니다. 잘 보시면 산 중턱까지 집터가 있습니다. 젤 끝에는 추장이, 그리고 그 아래쪽으로 신분이 높은 인디오들이 살았고, 아래로 내려오면서 평민들이 살았던 모양입니다. 한때 이 지역에는 20000명에 달하는 인디오들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과장된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닌 모양입니다. 실제로 인디오들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이야기로는 적게 잡아서 2만 명이라고 하니까요. 나중에 전쟁에 지고 나서 포로로 끌려간 인디오들만 수천명에 달한다는 사실은 그 숫자를 반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적지 입구쪽에 있는 선인장들의 모습입니다. 선인장들의 크기는 보통 성인의 서너배가 충분히 됩니다. 선인장의 하나 하나에 인디오들의 모자와 옷을 입혀 적군을 혼란스럽게 했다는 이야기가 농담이 아닌 모양입니다.


낄메스 인디오들은 잉카에 의해서 한 번 정복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잉카는 이들 낄메스 인디오들에게 그들의 선진 문화 즉 축조술이나 관계 수로에 대한 기술과 지식을 전수하면서 개런티를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발전된 지식과 기술을 전수받은 낄메스 인디오들은 이후 언젠가 이곳으로 침범해 들어올 스페인 사람들을 대항해서 싸우며 견딜수 있는 방법을 습지하게 된 듯 합니다.



유적지에는 수원이 없었습니다. 가까운 곳으로 산타 마리아 강이 있어서 유일한 수원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20000여 명이 이곳에서 거주를 하려면 강뿐 아니라 유적지 안쪽으로도 무엇인가 급수가 가능하게 하는 수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쉽게도 그런 흔적이나 그에 대한 정보는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유적지의 집터에서 하나 하나 볼 수 있었던 것은 벽 자체가 요새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벽의 두께는 어림잡아 7, 80센티미터가 되었습니다. 어떤 벽의 두께는 1미터가 넘었습니다. 이 정도 벽이라면 스페인 군의 총알이나 포탄으로도 겹겹이 두른 벽을 깨뜨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넓은 바위 위에는 인디오들이 절구로 썼을 것으로 보이는 구멍들이 많았습니다. 이 곳은 이른바 마을의 여러 여자들이 한꺼번에 일을 했던 장소로 보이네요. 절구처럼 보이는 구멍들이 한 두개가 아니라 십 수개가 한 바위위에 있었거든요.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조금씩 더 시야가 넓어집니다. 이미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던 큰 형과 큰 형님은 아래에서 올라오지 않고, 처음 온 사람들만 위로 올라갔습니다. 꼭대기에서 보면 정말 시야가 트여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겨우 중간 아래쪽에서 보았을 때에도 멀리 산타마리아 강까지 한 눈에 들어왔거든요. 아마 저쯤으로 행군해 오는 스페인의 군사들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전략을 연구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낄메스 인디오와 연합한 2 군데의 인디오 세력은 줄잡아 130년 동안 이곳에서 스페인 군대에게 저항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패배를 당하게 되었을 때, 살아남은 여자들은 뒤쪽의 산을 넘어 도망을 했고, 남자들은 수 천명이 1200킬로미터 떨어진 오늘날의 낄메스 지역까지 도보로 끌려갔습니다. 수 개월에 걸친 이 행군중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은 낄메스 인디오들은 자신들끼리 결의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즉, 여자들은 임신을 하지 않기로, 여자들이 임신을 하면 자결을 하기로, 남자들은 장가를 들지 않기로, 장가를 가더라도 씨를 남기지 않기로 결의를 했고, 최후의 한 사람까지 그 결의를 지켰다고 합니다.


낄메스 인디오와 안데스 지역의 인디오들을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 끌고간 이유가 무엇일까요? 남 아메리카를 정복한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도시의 도로를 건설하는 데 사용되는 석재 기술이 별로 없었던 모양입니다. 현재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거리를 덮고 있는 아스팔트를 살짝 걷어내보면 돌이 깔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와같은 석재를 다루는 데, 안데스의 인디오들은 특별했던 모양입니다. 그 기술자들이 필요했기에 수천명의 인디오들을 포로로 끌고 간 것입니다.



오늘날 낄메스 유적지와 그 인근에는 2010년 기준으로 200여 명의 낄메스 인디오의 후손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 인디오들은 현대 사회의 문명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조상들의 유적을 복원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문자로 역사가 기록되지 않은 민족이다보니 복원에 어려움이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낄메스 인디오들이 가지고 있었던 독특한 주거 방식같은 것들은 몇몇의 고증을 통해 어느정도 복원을 한 모양입니다. 저희가 방문한 이 유적지는 그런 복원 노력의 한 결과일 것입니다.



낄메스 인디오들의 유적지에는 이렇게 한산한 기념품 가게가 있습니다. 큰 형님은 이곳에 만들어진 돌로 된 호텔에서 숙박을 해 본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가능하면 이곳에서 자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이 호텔은 몇 년전에 있었던 어떤 분쟁 때문에 폐쇄가 되어 있습니다. 이 호텔의 폐쇄로 인해 낄메스 인디오들의 유적지는 더더욱 찾는 사람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 호텔이 다시 개장을 하게 된다면, 이곳에서 한번 꼭 숙박을 해 볼 것을 큰 형님으로부터 권고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기회가 된다면 이 호텔에서 꼭 숙박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출발하기 전에 본 간판입니다. 1534년부터 1665년까지 자그마치 131년동안 스페인 정복군에 맞서 저항했다는 간단한 기록의 간판입니다. 개화라는 명목으로 수백년간 자연과 함께 살아온 문명을 파괴했던 16, 17세기의 유럽 강국들이 21, 22세기에는 더더욱 도마에 오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공존 공생하는 길을 택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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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형님의 제안대로 시내 중심가의 플라자 Plaza (광장) 에서 세 블럭 떨어진 곳에서 라 라마다 La Ramada 라는 숙박업소를 찾아냈습니다. 주변의 숙박업소에 비해서 공간이 좀 더 넓은데다, 가격도 착해서 좋더군요. 스마트 폰으로 이 부근의 숙박업소들을 검색해 보았는데, 이 집이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비교적 최근에 연 곳으로 보입니다. 이 숙박업소 바로 옆에도 숙박업소가 있고, 또 그 숙박업소에 대한 리뷰도 있는데 이 집이 없다는 것이 이상해 보이거든요. 두 군데 다 들어가 보았는데, 가격, 시설, 접대수준에서 모든 부면이 다 나았습니다. 게다가 아침 식사도 준다니 금상첨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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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서 우리가 잤던 곳을 보니 안쪽은 이렇게 생겼군요. ㅋㅋㅋ



주인 아주머니와 아저씨 부부인데, 비교적 젊어 보입니다. 이 숙박업소가 언제 생겼냐고 물었더니 1년 정도 되었다고 하네요. 아침 식사를 하는 식탁에는 낯익은 상보가 깔려 있습니다. 대뜸 알아보고, 볼리비아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네요. 바로 알아차린 동양인이 신기해 보였겠죠? 그런데, 이 부부는 까파자떼 토박이들이라고 합니다. 볼리비아산 상보는, 이곳에서도 많이 구할 수 있나 봅니다. ㅎㅎㅎ



다시 밤으로 돌아옵니다. 까파자떼 시내는 늦게까지 상점을 열어 두고 관광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더군요. 안데스 특산물들은 이곳에서도 발견됩니다. 하지만 잘 살펴 보셔야 합니다. 수공예품이라고 해서 모두가 이 지역 상품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중국제 물건들은 이 지역에서도 흔하게 발견됩니다. 꼭 그 점을 확인하셔야 합니다.




공예품을 파는 곳 뿐 아니라, 이제 시작하는 저녁시간을 위해 식당들이 문을 열었거나 열고 있습니다. 특히 까파자떼 중심에 있는 광장을 중심으로 식당들이 문을 열고 있습니다. 저녁 식사를 어디서 해야 할지, 일단 중심 광장을 한 바퀴 돌기로 했습니다.


남미의 시골 도시들은 대부분 중앙 광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광장을 중심으로 대성당, 시청, 호텔, 음식점들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4 모퉁이의 어느 길 하나는 보행자 도로로 지정됩니다. 그곳이 말하자면 상업 중심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질구레한 지식은 남미의 어느 곳을 가도 쉽게 그 지역 상권을 엿볼 수 있도록 해 줍니다. ^^



저녁 늦게까지 열려 있는 수공예품 전시장입니다. 들어가서 쭉 살펴봅니다. 특이한 상품은 없군요. 꼭 손에 넣고 싶은 상품이 없다는 뜻입니다. ^^




그런가 하면 살따 주에서 생산되는 포도주들만 판매하는 와이너리도 있네요. 현재 살따 주의 포도주들은 생산량과 품질에서 엄청나게 가속이 붙어 있습니다.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와인 생산지는 멘도싸 입니다. 멘도싸에서는 아르헨티나의 주력 포도주인 말벡을 거의 70% 생산을 합니다. 말벡 뿐 아니라 아르헨티나 산 포도주의 전체의 거의 70%를 생산하는 곳이 멘도싸입니다. 그 다음으로 생산량이 많은 곳이 멘도싸의 옆에 위치한 산 후안 주 인데요. 이곳에서도 25% 정도의 포도주가 생산이 됩니다. 아마도 산 후안 다음으로 포도주를 생산하고 있는 곳이 이곳 살따인데요. 어림잡아 살따에서는 4, 5% 정도가 생산됩니다. 


퍼센트 테이지로 보면 아르헨티나 최고 명품 포도주의 70%는 멘도싸가, 25%는 산후안이 그리고 5%는 살따가 차지해야겠지요? 하지만, 명품 포도주는 주로 멘도싸와 살따에서 생산이 됩니다. 산후안은 생산량이 좀 많을 뿐, 이렇다 할 명품 포도주가 별로 없습니다. 나중에 살따의 포도주를 좀 소개해 드리죠. ^^



하지만 까파자떼에서 마신 것은 와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도시 광장의 한 모퉁이에 알코홀 8도짜리 흑맥주를 파는 곳이 있어서, 그곳에서 식사를 하며 맥주를 마셔보았습니다. 8도라니, 이번 여행에서 제일 쎈 맥주를 마셔보는군요. 맛은요? 예..... 씁쓸하더군요. ^^


이렇게 해서 까파자떼에서의 하룻 저녁은 지나갔습니다. 이제 여행이 종반으로 치닫고 있죠? 하지만 아직 클라이막스가 남아 있습니다. 이제 더 멋진 아르헨티나 북서쪽의 풍경을 향해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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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었으니 이제 원래 계획대로 까파자떼로 향해야겠지요? 까파자떼는 살따 시에서 68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150여 킬로미터 아래쪽으로 있습니다. 산수가 수려한 곳이고 해발 1700여 미터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서늘하고 시원한 곳입니다. 처음 살따에서 출발할 때는 경치 좋은 곳이 별로 없지만 100여 킬로미터를 가서 까파자떼를 50여 킬로미터 남겨두면서부터 사진에 나오는 산맥이 시작됩니다. 의미를 알 수 없지만 산맥의 이름은 죽은 사자 산맥 Sierra de Leon Muerte 인데, 아마 이 지역에 살았던 인디오들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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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스 산맥을 끼고, 이런 산의 지형은 곳곳에 나타나지만, 살따에서 까파자떼로 가는 길에 나타나는 모습의 산들은 아주 독특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냐구요? 다음 사진들을 좀 보시기 바랍니다.




주의해서 보신 분들이라면 알아채렸을지 모릅니다. 바로 산의 형태인데, 산(山)의 모습이 좀 기형적입니다. 지층이 사선으로 누워 있습니다. 아마도 이 지역의 지형이 형성될 때, 지층이 불규칙하게 융기를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지층을 형성한 부분들이 부분적으로 융기되어 사선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여집니다. 아무튼 형형 색색의 산들이 특이한 형태를 가지고서 나와 있는 모습은 안데스의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장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후후이에서도 보았던 풍경은 여기서도 계속됩니다. 검은산, 녹색산, 붉은 산, 노란산, 회색산, 청록색산 기타 등등의 산들이 보여집니다.



그러다 악마의 목구멍 Garganta de Dablo 라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입구에 항상 있는 인디오 상인들이 사라졌군요. 기념품들을 파는 인디오들인데, 때로는 조금 성가시게 구는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악마의 목구멍은 지형이 융기될 때 뒤틀어지고 중간이 분리되면서 가운데 틈이 조금 벌어진 듯한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과수의 악마의 목구멍과는 엄청 다른 모습이네요.



그리고 조금 더 갔더니 이번에는 안피 떼아뜨로 Anfi Teatro 라고 이름이 붙여진 지형이 나옵니다. 높이는 어림잡아 2, 300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데, 역시 인디오들이 없어서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비슷한 지형이지만, 좀 더 밀도가 있어서 이곳에서는 소리를 지르면 메아리가 져 들려옵니다. 그래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겠죠.



입구에서 꼭대기를 쳐다보는 파라과이 친구입니다. 저 안쪽으로는 우리 일행 뒤를 따라 들어온 아르헨티나 사람들입니다. 안쪽의 공간은 지름이 50여미터가 되는 공간입니다. 대단한 모습이 아닐 수 없네요. 20여년 만에 이곳을 찾았는데, 그때보다 더 멋진 경험을 하는 듯 합니다. 


그리고 68번 국도를 따라가며 멋진 지형들의 모습을 계속해서 살펴보게 됩니다.






까파자떼에 다가갈 때쯤, 해가 지더군요. 물론 산등성이 위로 해가 넘어가는 것인데, 이곳 지형상 해가 지고 난 뒤에도 몇 군데는 해가 비칩니다. ㅎㅎㅎ




이건 이름이 오벨리크스 Obelisco 더군요. 비슷하지 않나요? 그렇게 계속 진행을 하다가 지난번에 큰 형이 와서 사진을 찍었다는 곳에서 서서 독사진들을 찍었습니다. 무슨 바위라고 이름이 있더만, 전 잘 모르겠고, 생긴게 꼭 남근바위처럼 생겼더군요. 한 번 보시렵니까?



비슷하지 않나요? ㅎㅎㅎ 저 위에 올라가서 바위를 잡고 사진을 찍었는데, 바위 기둥의 높이는 한 15미터 정도 되는 모양입니다. 사암층으로 이루어진 바위들이어서 앞으로 수십년 후면 더 특이한 형태로 변할 듯 합니다. 그 이전에 한번씩들 오셔서 보셔야 할텐데 말입니다 ^^



그렇게 시간이 지나 어둑어둑 해질 때, 까파자떼에 도착했습니다. GPS 큰 형님은 여기를 수도 없이 지나가 보았지만, 숙박을 해 본적이 없어서 추천해줄 곳이 없다고 하네요. 하지만, 그분의 철학대로 중심지에서 두 서너 블록 떨어진 곳을 중점적으로 숙소를 찾아 보기로 했습니다. 큰 형님의 철학은 간단해 보이지만, 경험에서 우러나온 깊은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도시 입구에서 가까운 숙소는 그냥 패스해 보았습니다. 물론 들어가서 살펴보고 대충의 가격을 알아보기는 했지만요. 까파자떼 시에서의 밤은 어떨까요? ㅎㅎㅎ;; 다음 포스팅을 기다리세요.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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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이과수 Foz do Iguacu, PR 에서 브라질 북쪽의 포르탈레자 Fortaleza, CE 로 이주를 하겠다고 몇 달전에 블로그에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이사를 가기 위해서 몇가지 준비와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요. 드디어 포르탈레자로 이주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삿짐은 벌써 한달전에 출발을 했고, 이제 저희 부부만 둘이서 15박 16일동안 자동차로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며칠 안으로 이과수를 떠나 적도 바로 아래 포르탈레자로 갑니다. 그 긴 여정동안 어디 어디를 들러 가게 될지를 이번 포스팅에서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보고 싶은 광경도 있구요. 브라질을 이렇게 여행해 볼 기회가 생애중에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 광경들을 여러분과 함께 공유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포스트에 삽입된 사진들은 모두 구글 이미지 (google images)에서 캡쳐한 것입니다.


그럼 먼저 저희들의 여행이 얼마나 먼 거리인지를 좀 알려드려야겠죠? 그걸 자동차로 갈 걸 생각하니 한편 설레기도 하지만 한편 힘들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여행을 하는 입장이니 불평해서는 안되겠죠? 다음 지도를 보시기 바랍니다.



이과수에서 포르탈레자까지는 브라질 가운데를 가로질러 갈 경우 그 거리가 3800km 에 달합니다. 대략 서울 -> 부산을 450km 로 잡았을 때, 네번 정도를 왕복해야 하는 거리입니다. 대단하죠? 하지만 브라질 중앙을 가로질러 가는 저 길은 아주 힘듭니다. 첫째로 길이 무지 무지 안 좋습니다. 저는 이미 브라질 남쪽의 안 좋은 길을 가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안 좋은 길은 사양하려고 합니다. 제가 다녀본 남쪽의 안 좋은 길에 대한 경험이 블로그에서 연재되다 그만두었죠? <자동차로 지구 반바퀴>라는 주제로 계속 올렸는데, 10년전 이야기가 되어서 쓰다 말다를 계속하다, 볼리비아에서 그냥 멈춰 서 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나머지 이야기를 좀 올려 보겠습니다. ㅎㅎㅎ


아무튼 가운데 길로 가는 것이 안좋은 두 번째 이유는 볼게 별로 없습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중간에 여기 저기 숙박을 해야 하는데, 아는 친구들이 별로 없는 관계로 숙박비가 많이 듭니다. 그래서 다른 길로 가기로 했습니다.

바로 파란색 길인데요. 좀 더 세분화해서 보여 드립니다.



대략 하루에 평균 250km~750km를 갈 수 있도록 계획을 잡았습니다. 첫날은 꾸리찌바 Curitiba, PR 로 갑니다. 꾸리찌바는 제가 예전에 살았던 곳이고, 친구들이 많은 곳입니다. 하루 정도를 그곳에서 머무를 계획입니다. 친구들도 만나고, (사실 북쪽으로 가면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니 이번에 다 만나고 가야겠죠?) 할 생각입니다.


다음날은 꾸리찌바를 떠나 상파울로 Sao Paulo, SP 로 갑니다. 대략 400km 거리입니다. 오후 늦게 상파울로를 들어가서 장인 장모님 댁에서 숙박을 할 것입니다. 저희 부부는 상파울로에서 친구들과 만나고, 또 필요한 일들을 보기 위해서 사흘 정도를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 코스는 두 개의 옵션이 있습니다.


첫째로는 그 다음 목적지를 리오 데 자네이루 Rio de Janeiro, RJ 로 잡았을 경우 입니다. 상파울로에서 리오 데 자네이루까지는 대략 450km가 됩니다. 그곳에는 여러 친구들이 있습니다. 한국인도 있고 브라질 친구도 있습니다. 그 친구들 가운데는 오랜 인연이 있는 친구도 있고 최근에 사귄 친구도 있습니다. 그 친구들에게 숙소를 하루 부탁할 생각입니다.


그 다음날에는 리오 데 자네이루를 떠나 북쪽 에스삐리뚜 산또 주의 주도인 비또리아 Vitoria, ES 까지 이동합니다. 리오 데 자네이루에서 비또리아는 대략 530km 정도 됩니다. 비또리아는 집 사람이 결혼 전에 3년을 머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는데, 이제 20여년 만에 그 친구들과 만날 수 있다고 설레고 있습니다. 친구들과 연락을 해서 그곳에서도 하루를 보낼 생각입니다. 그리고 비또리아를 떠나면 그 다음 목적지는 브라질 북쪽의 유명한 관광지인 뽀르또 세구로 Porto Seguro, BA 로 갈 것입니다.


두 번째 옵션은 상 파울로에서 바닷가 길이 아닌 내륙 길을 통해 미나스 제라이스 Minas Gerais 주의 주도인 벨로 오리존찌 Belo Horizonte 로 간 다음 에스피리투 산토 Espirito Santo 주의 상 마테우스 Sao Mateus 라는 곳까지 가서 101번 국도를 따라 뽀르또 세구로로 가는 것입니다. 현재 이 구간에 대해서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옵션에 비해 좋은 점은 길이 좋다는 것과 교통량이 별로 없어 덜 위험하다는 것이 꼽힙니다. 나쁜 점은 그 길로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 숙박비가 좀 증가한다는 거겠지요. ㅎㅎㅎ


첫번째 옵션으로 갈 경우 비또리아에서 뽀르또 세구로까지는 590km 거리가 됩니다. 불행히도 저희 부부는 뽀르또 세구로에는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따라서 한 이틀 정도를 호텔에 머무를 생각입니다. 뽀르또 세구로에 왜 그렇게 많은 날을 머무느냐구요? 제일 위의 사진을 보셨습니까? 아주 아름다운 해변이었는데, 바로 그곳이 뽀르또 세구로 입니다. 뽀르또 세구로의 다른 사진을 좀 보여 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바닷속이 아름다워서 스노클을 하기에 아주 좋은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바이아 특유의 미지근한 바닷물속에는 열대어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물고기들이 산호초 사이에서 놀고 있습니다. 그 광경을 보기 위해서 브라질은 물론 인근 나라들과 해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습니다. 기왕지사 이사를 가는 입장이니 이곳에 들러 며칠 관광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뽀르또 세구로를 떠나서는 바이아 주의 주도인 살바도르 Salvador, BA 로 향합니다. 살바도르까지는 720km 가 됩니다. 살바도르 시내는 아프리카 문화와 그리스도교 문화를 받은 도시때문에 유명하지요? 해변 때문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희는 계속 해변으로 다니기 때문에 그건 그리 메리트가 없어 보입니다. 아무튼 살바도르에는 상파울로에 있을 때 사귀었던 한 부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친구들과 재회할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살바도르를 떠나면 그 다음에 목적지가 마쎄이오 Maceio, AL 입니다. 마쎄이오에는 친한 친구들이 신혼여행으로 갔다 왔던 곳입니다. 아주 멋진 해변과 바다 한가운데가 멋진 곳인데, 살바도르에서부터 600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역시 뽀르또 세구로처럼 아는 사람이 없는 관계로 며칠 호텔 신세를 질 것입니다. 마쎄이오에서 저희 부부가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요? 다음 사진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마쎄이오에는 바다 한가운데에 산호초들로 이루어진 섬들이 있습니다. 섬이라고 하기에 뭐한것이 수면 아래에 있기 때문에 좀 그렇군요. 하지만 바다 한가운데에 배를 타고 가면 성인 가슴높이의 천연 수영장들이 널려 있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열대어들과 헤엄도 치고 스노클도 하고 즐기게 되어 있습니다. 뽀르또 세구로와 비슷하지만 다른 분위기의 해변, 그게 저희 부부는 보고 싶군요. 그것을 좀 즐길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ㅎㅎㅎ


마쎄이오를 떠나서는 이제 슬슬 여행이 지겨워질 때가 되겠지요? 좀 서둘러야 할 듯 합니다. 그래서 헤시피 Recife, PE 를 잠깐 들러 도시를 구경하고는 그곳에서 130km 정도 떨어져 있는 조앙 뻬소아 Joao Pessoa, PB 로 갑니다. 마쎄이오에서 조앙뻬소아까지는 400km가 채 안됩니다. 조앙뻬소아에는 최근에 그쪽으로 이사를 간 실바노와 라니아 Silvano & Lania 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 부부는 저희 부부를 하룻밤 재워줄 거라 믿습니다. ^^


실바노와 라니아 부부를 만난 다음날 우리 부부는 그곳에서 북쪽으로 200여 킬로미터 떨어진 나딸 Natal, RN 이라는 곳으로 갈 것입니다. 그곳에는 루이스와 빠울라 Luis & Paula 부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역시 최근에 사귄 부부이지만, 저희 부부와 아주 친한 친구들이어서 실바노&라니아 부부와 마찬가지로 그냥 지나칠수가 없는 친구들이죠. 그 부부와 마지막 저녁을 보내려고 합니다.


그 다음날은 여행의 마지막 날입니다. 나딸에서 포르탈레자까지는 550km 거리입니다. 하루에 갈 만한 거리인 셈이죠. 포르탈레자에는 또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과수에서부터 포르탈레자까지 대략 5000 km 거리를 여행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괜찮은 코스지요? 혹시 중간 중간에 여기는 꼭 보시고 가라고 권해주고 싶은 곳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제 포스팅 아래쪽에 댓글로 달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조만간 포르탈레자에서 포스팅을 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 포스팅은 현재 올라가고 있는 아르헨티나 북서쪽 풍경에 대한 포스팅처럼 모두 예약으로 올라가는 포스트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달아주는 댓글에 대한 답글이 달리는 데까지 시간이 좀 걸릴 수 있으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두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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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타를 지나쳐 까파자떼로 기수를 돌렸습니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주린 배를 채우는 것은 아주 중요하겠죠? 그래서 큰 형님의 제안대로 이 부근에 있는 송어 양식장으로 향합니다. 송어 Trucha 는 1급수 맑은 물에서, 그것도 아주 차가운 물에서 사는 물고기입니다. 여러 종류가 있어서, 살 색도 아주 여러가지인데, 아르헨티나에서는 남쪽으로 내려가면 자연산이 많고, 이렇게 북쪽에서는 양식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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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꼬아나 라는 마을에서 송어를 양식한답니다. 그래서 주변 식료품점에 들러서 백포도주를 좀 사고, 코카 콜라와 물과 빵을 좀 샀습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출발할 때 가져온 초장과 와사비를 드디어 먹게 생겼네요. ㅎㅎㅎ;;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회를 뜰 줄 아시는 일행이 한 분도 없는 관계로....



양식장으로 들어가는 길은 처음부터 이렇게 비포장이었습니다. 1킬로미터 정도를 이 정도 비포장으로 들어간 다음.



좌측으로 있는 이런 좁고 안좋은 길로 4킬로미터를 들어가야 합니다. 얼마나 들어갔는지 한 10킬로미터는 되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나오면서 거리를 재 보니 이 길이 딱 4킬로미터고 좀 전의 그 길이 1킬로미터더군요. 정확하게 5킬로미터였습니다. 



길은 안 좋았지만, 풍경은 참 좋았습니다. 양편 옆으로 보이는 풍경이 참 아늑한 시골 풍경이더군요. 그리고 위로 올라갈 수록 산골의 모습은 더더욱 좋아 졌습니다. 인적도 드문드문, 집들도 드문드문한 풍경이 계속 되더니 거의 끝에 다다르자 시냇가가 나타났습니다.



양식장으로 가려면 이 시냇물을 건너가야 합니다. 물론 시냇물이 얕기는 했지만, 물을 그냥 넘어가려니까 좀 그렇더군요. 이런 길을 건너서 조금 더 올라가자 입구가 나타났습니다.



입구라고해서 뭐, 집에 들어가는 것 같지는 않았구요. 넓은 목초지에 말이 두 마리가 풀을 뜯고 있었는데, 인적없는 곳에 외지인이 나타나자 개들이 대여섯 마리 나타났습니다. 대부분 꼬리를 흔들었는데, 그 중 하나에는 입에 재갈을 물었더군요. 이녀석이 낯선 사람을 무는 녀석인가 봅니다. ^^



양식장의 주인은 점잖게 생긴 아르헨티나 사람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어느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던 교수라고 하는군요. 교수가 양식장을 한다는 것이 좀 이상했는데, 하시는 말씀이 학생들이 공부를 너무 안해서 교수생활이 힘들었다고 합니다. 아르헨티나의 현 상황에 대해서 욕설을 늘어놓기 시작하는데, 그 욕설의 수준이 대단하네요.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 양반, 피해망상증 환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보였습니다.



흥정을 하고 송어 몇 마리를 잡기로 했습니다. 총 6마리 정도를 잡아서 무게를 재고 회를 떴습니다. 그리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좀전에 회를 뜨는 사람이 없다고 했죠? 경험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급하면 통한다고, 일행 중 두 명이 칼을 잡고 비슷하게 떴습니다. 그렇게 싱싱한 송어 회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양어장의 모습을 좀 보여 드리죠.



집주인은 산골의 찬 물을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산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물과 지하수를 관계급수시설을 통해 여기 저기로 돌리고 집어넣어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넓은 연못 혹은 호수도 두개가 있었습니다. 손님들이 원하면 이곳에서 송어 낚시를 할 수 있습니다. 낚시 도구는 빌려줍니다. 하지만 잡은 물고기는 모두 이 양어장의 상품이므로 먹기전에 무게를 달아서 돈을 받습니다. 원하는 사람은 낚시를 해서 직접 건져서 먹게 하지만 잡는 즐거움 뿐이지 돈을 내는 것은 동일합니다. ^^



낚시하기 싫거나 시간이 안 되는 사람은 아래쪽에 위치한 어장에서 뜰채로 송어를 낚습니다. 넓은 어장속에 뜰채를 넣어봐야 걸리지 않기 때문에 먹이를 던져주어 송어가 모이게 한 다음 뜰채로 낚습니다.



뜰채로 건지는 주인 아저씨의 모습입니다. 아들과 둘이서만 양식장을 하는데, 그날따라 아들이 시내를 나가서 안 돌아온다고 욕을 욕을 하더군요.



우리는 사 가지고 온 음료수들을 찬 물속에 집어 넣었습니다. 송어를 잡아 회를 뜨는 그 몇 십분 동안 찬 물에 넣어 두었는데, 마실 때 쯤에는 백 포도주가 아주 시원해 지더군요.



코카콜라 역시 찬 물에 담가 두었더니 아주 시원해 졌습니다. 여름철이라면 수박도 던져 넣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회를 먹고 나면 계산을 해야죠? 송어 한 킬로에 70페소를 받네요. 게다가 도구를 사용한 가격도 받아서 꽤나 바가지를 쓴 기분이었습니다. 큰 형님 말씀에 의하면, 예전에 왔을 때는 인심이 좋았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오래동안 양식장을 하더니 돈독이 오른 모양입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다시 포장도로로 나와서 까파자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양식장에서 비포장으로 까치 계곡 Valle de Cachi 로 돌아갈 수 있지만 5시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네요. 까치 계곡은 살타주의 멋진 경관중 하나가 제공되는 곳입니다. 저희는 시간이 없었지만, 살타로 오시는 분들이라면 꼭 가보라고 격려해 드립니다. 까파자떼로 가는 길에는 죽은 사자 산맥 Sierra de Leon Muerto 을 지나가게 됩니다. 이 길에도 아주 멋진 모습이 나타납니다. 다음 포스트에서 산맥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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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라 우아시 까바냐에서 하룻밤을 잘 지내고 아침이 되었습니다. 우리 일행의 스케줄에 맞춰 아침 식사를 30분  당겨서 채려준 아침상은 아르헨티나 식 아침 치고는 꽤나 화려했습니다. 무엇보다 화려했던 것은 식기 도구였는데요. 지역의 잉카 문양이 드러간 질그릇속에 커피와 우유가 담겨나오고, 빵을 담는 개인용 접시나 설탕과 차를 담은 그릇들 모두가 세트로 되어 있었습니다. 기분좋은 아침 식사를 하고보니 아침을 먹겠다고 한게 정말 다행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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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차를 남쪽으로 몰아 살타 시로 갑니다. 살타 시는 동일한 이름의 살타 주의 주도입니다. 후후이에서 살타까지는 그렇게 멀지 않습니다. 직선 거리로는 70킬로미터 정도이죠. 하지만 도로가 좀 그래서 돌아가게 됩니다. 돌아가는 도로의 길이는 최단 거리가 120 킬로미터 정도고 제일 좋은 길로 가면 거의 200 킬로미터를 가야 합니다. 그래서 저희 일행은 구경도 할 겸, 구불구불한 9번 국도를 따라 70킬로미터 거리를 천천히 가기로 결정하고 차를 몰았습니다.



남으로 내려가는 9번 국도는 후후이 시에 이를 때까지는 아주 좋았고, 넓었고, 쭉 뚫려 있었습니다. 게다가 요즘 계속 확장 공사를 하고 있었기에 시원하게 뚫린 길을 아주 신나게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후후이 시내에서 9번 국도의 구 도로를 타기 위해서는 좀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구 도로와 신 도로와 또 고속도로가 겹겹이 겹쳐서 아주 혼란스러웠거든요. 하지만 우리 차에는 인간 GPS가 타고 있었다는 사실... ㅎㅎㅎ;; 혼란없이 구 도로를 잡아탈 수 있었습니다.



구 도로를 따라서 조금 가다보니 지형이 멋있어지면서 왼편으로 호수가 나타났습니다. 바로 라 씨에나가 La Cienaga 이라고 하는 호수입니다. GPS 큰 형님은 지리는 잘 아시지만 스페인어는 좀 딸리시나 봅니다. 씨에나가 라는 스페인어 단어의 의미가 "구비구비"라고 하셨는데, 브라질 집에 돌아와서 사전을 살펴보니 "수렁, 늪지"를 의미하는 단어군요. 쩝... 그래도 지리를 잘 아시는 분인데다 연세도 높으시니 그냥 넘어가 줍니다. ^^



9번 국도의 씨에나가 호수에서부터 시작하는 길은 국도 중에 아마도 가장 특이한 국도일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냐면요? 쌍방 2차선의 도로인데, 도로폭이 겨우 4미터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전체 구간 20여 킬로미터가 그렇게 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구간이 한쪽은 절벽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양쪽에서 차가 온다면, 둘 다 한쪽 바퀴는 도로 바깥으로 나가야 하는데, 절벽쪽의 차를 탄 사람의 심정은 어떻게 될까요?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도로에서 여태까지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조심을 하기 때문이겠지요? ㅎㅎㅎ



폭 4미터의 도로인데 있을 것은 다 있습니다. 교량도 있고, 추월선도 있는데, 솔직히 어떻게 추월을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앞서 가는 차가 비켜 주어야만 하는데, 누가 뒷차 좋으라고 한쪽 바퀴를 도로 바깥으로 내놓고 갈지....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차선이 너무 좁아서 바퀴 한쪽이 차선 바깥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가고 있는 이쪽도 비슷하죠? 다만 안심이 되는 것은 이쪽은 그래도 절벽 안쪽이라는 거죠. 맞은편에서 오는 자동차들은 절벽쪽으로 한쪽 바퀴를 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운전자는 그래도 좋죠. 운전자 옆의 보조석에 앉은 사람의 기분은 어떨까요? ㅎㅎㅎ



거기에 위 사진처럼 가끔씩 동물들도 나타납니다. 소뿐 아니라 말과 양과 염소들이 말이죠. 정말 아찔한 도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다른 차들이 최대 120km를 돌아가는 것이겠죠? 하지만 경치는 정말 좋더군요. 한번쯤은 이 길로 가 보는 것도 좋아 보입니다. 특히 여친을 사귄 사람이라면 한번쯤 가 보는 것도 좋겠더군요. 호러 극장에 가보는 것보다 훨씬 스릴을 즐길 수 있을 듯 합니다. ㅎㅎㅎ



위험 구간을 모두 지나고 나니 살타 주의 경계로 넘어갑니다. 이곳에서 검문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별 탈없이 보내 주더군요.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떠나면 지방의 경찰들은 대체적으로 친절합니다.



살타 시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져 있는 타투 Tatu 혹은 아르마딜로 Armadillo 의 조형물입니다. 아마도 살타에 이 동물이 많은 모양이네요. 그러구보니 예전에 저는 살타에서 짜랑고를 만드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짜랑고의 뒷판이 아르마딜로인 것을 보면 살타에 아르마딜로가 많기는 한 모양입니다.



이제 살타 시내로 들어갑니다. 살타 시내는 오늘날의 대도시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특징없는 도시입니다. 참, 엠빠나다 라는 음식이 있죠? 만두처럼 생겼는데, 그 엠빠나다 중에 건포도가 들어가서 맛이 독특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그 엠빠나다를 살떼냐 라고 부르는데, 살타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살타에 오시면 꼭 그 엠빠나다를 드셔 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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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라 우아시 Huaira Huasi 까바냐에 짐을 풀고는 52번 지방도로를 따라 서북쪽으로 향했습니다. 이 지역의 들판에는 백년초 즉 선인장들이 큰 군락을 이루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생각하는 선인장들에 비해 이 지역의 선인장들은 키가 수 미터에 달하는 정말 장관을 만들고 있습니다. 예전에 들은 이야기로, 인디오들이 스페인과 전쟁을 할 때, 선인장들에게 모자와 뽄쵸를 두르게 해서, 군사가 많은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정말 그렇게 상상을 해 보면 가능해 보이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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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장들의 모습입니다. 가시가 있어서 그렇지만, 줄기도 어른 몸통보다 굵습니다. 키는 당연히 제 키(184cm)를 훌쩍 넘습니다. 아니, 제 키의 수 배가 되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 올라갔나요? 산등성이로 떼를 지어 움직이고 있는 과나꼬 Guanaco 의 무리가 보여서 잠깐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정상 부근인가 봅니다. 실제로 차를 세울 수 있는 공간도 있고, 지나는 관광객을 상대로 이런 저런 수공예품을 파는 인디오 상인들도 보입니다. 게다가 제 눈을 끈 것이 하나 더 있는데요.



바로 해발 4170미터라는 표지판입니다. 국도 52번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해야 하겠군요. 4170미터면 백두산보다 1400미터 가량 위쪽입니다. 남한의 한라산보다는 두 배나 높은 곳이라고 해야 하겠군요. 일행들은 코카잎을 앂고 있는 사람들이나, 혹은 그냥 차에 앉아 계신 분들이 있었지만, 저는 코카잎도 없이 그냥 용감하게 내려서 성큼성큼 걸어서 인증샷을 하나 찍었습니다. 다만, 제 얼굴이 나온 관계로, 그 사진은 게재하지 않습니다. ㅎㅎㅎ



이곳에서부터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의 거리입니다. 1750킬로미터. 서울 부산을 두번 왕복해야 하는 거리네요. 남미가 정말 넓기는 하죠? 이제 정상을 올라왔으니, 내려가야 하겠지요?



내려가는 길입니다. 사진을 잘 보시면 내려가는 도로가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산과 산 사이에 뒤쪽 산 앞자락으로 흰 삼각형 부분이 보일 것입니다. 바로 그 부분이 우리의 현재 목적지인 살라르 그란데 Salar Grande 혹은 살리나스 그란데스 Salinas Grandes 라고 하는 곳입니다. 앞서 포스팅에서 볼리비아 우유니 Uyuni, Bolivia 와 닮았지만 규모만 작다고 했지요? 


남미의 지도를 보시면 인공 위성에서 찍었을 때, 흰 부분으로 보이는 곳들이 꽤나 됩니다. 하지만 그 지역들 가운데 정말로 흰 소금으로만 이루어진 곳은 볼리비아의 우유니와 아르헨티나의 살라르 그란데스 두 군데 뿐입니다. 나머지 지역들은 물론 소금기를 가진 땅이기는 하지만, 순백이 아니라 황토 혹은 적색의 흙들과 섞여 있습니다. 순백의 소금 사막을 보시기 원하신다면 볼리비아의 우유니나 아르헨티나의 이곳으로 오셔야 합니다. ^^



52번 국도는 살라르 그란데의 윗 부분을 관통합니다. 그 중간에 소금 사막으로 내려가는 곳이 있어서 소금 사막으로 내려가 봅니다. 그리고 달리는 차 안에서 몇 장을 찍어 보았습니다. 그 중 한 장을 공개합니다. ^^



어떻습니까? 딱 볼리비아의 우유니와 비슷하죠? 다만 볼리비아의 우유니는 지평선 끝에 산이 없지만, 이곳에는 멀리 안데스의 산자락이 보인다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이 지역으로 오실 때는 모자와 선크림, 선글라스 그리고 목도리는 필수입니다. 햇볕이 소금에 반사되어 엄청나게 타기 때문이죠. 비가 조금 내린다면 무지 멋있었을 텐데, 그런 행운은 없군요. ㅎㅎㅎ



소금을 한쪽으로 긁어 쌓아놓은 모습입니다. 꼭 흰 눈처럼 보이는데, 소금이 이렇게 쌓여 있는 모습이 신기하죠?



염전이라고 할 만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맑은 소금물이 있는 염전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네모낳게 파 놓으면 아래쪽에서 다시 소금기가 올라옵니다. 위에 고체화된 소금은 조금 지저분하지만, 이렇게 아래에서 올라오는 소금은 아주 맑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정제할 경우 세척해야 하긴 합니다.



입에 잠깐 넣어보았는데, 정말 짜더군요. 쯔ㅉㅉㅉㅉ....



소금층을 잘라 만든 소금 벽돌입니다. 이걸 어디다 쓰느냐구요? 물론 건축하는 데 쓰입니다. 이 지역에 소금 호텔은 없지만, 소금으로 만든 건물은 존재합니다. 이를테면요.



소금으로 만든, 아니 정확하게는 소금 벽돌로 만든 건물입니다. 안에는 여러 가지 소금으로 만든 장식품을 팝니다. 소금으로 만든 장식품의 품질은 조악해서 사지 않았지만, 먼 이국에서 오신 분들에게는 좀 특이한 추억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다시 돌아오는 길입니다. 산 위에 홀로 서 있는 과나꼬의 모습이 우아해 보입니다. 해발 4000미터 위에서 살아가는 저 짐승에게 어떤 천적이 있을까요? 더구나 이 지역에는 아메리칸 퓨마나 재규어도 없는데 말입니다. 여유있게 움직이는 모습에서 평온한 삶이 느껴집니다.



먼저 지나온 고지 4170미터를 넘어가면 고지까지 올라오는 이런 달팽이 Caracol 도로가 나옵니다. 수 십개의 커브길을 돌아서 내려가는데, 귀가 뻥 뚤려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 지역에서는 뛰거나 빨리 걸으면 안 됩니다. 천천히, 천천히 걸어야 하고, 몸에 힘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혈압이 올라가기 때문이죠. 따라서 볼일을 보셔야 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좀 더 저지대에서 보시고, 이렇게 고지대로 올라와서는 볼일을 보시지 않기를 권해 드립니다. 실제로 실험을 해 보신 분이 있는데, 그분 표현으로는 볼일 보다가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고 하니.... 조심하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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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포스팅에서 소개했던 까바냐와는 달리 저렴하지만 정말 괜찮은 까바냐 하나를 더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집에서 짐을 내려놓고 관광을 더 했더랬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까바냐를 소개하는 포스트로 블로그 하나를 또 잡아먹네요. ㅎㅎㅎ;; 이 까바냐의 이름은 와이라 우아시 Huaira Huasi 라고 하는데, 아마도 집주인이 케추아어를 표기하는 데 애를 먹은 듯 합니다. 실은 와이라라는 단어에서 i 대신에 y가 쓰여야 하는데, 암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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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라 우아시는 케추아어로 바람의 집 이란 뜻입니다. 후후이의 이 지역은 정말이지 바람이 많이 붑니다. 따라서 바람의 집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바람의 집이라고 스페인어로 쓰는 것보다 케추아어로 쓰니까 더 분위기와 어울려 보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와이라 우아시 까바냐는 앞서 소개한 Casa de Adobe 호텔에서 1킬로미터 정도 더 52번 국도를 따라 올라가다가 있습니다. 그 위쪽으로도 계속 까바냐들을 짓고 있는 것으로 보아, 몇 년 후면 더 나은 까바냐들이 줄줄이 들어설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현재로서는 제일 위쪽에 위치한 까바냐 중의 한 곳이 이곳이며, 그 까바냐들 가운데 가격이나 시설이 제일 훌륭하고 착합니다.





위사진들은 저희 일행이 묵은 객실의 모습입니다. 일반 사람들을 위한 객실은 단촐하면서도 깔끔하게 꾸며져 있고, 무엇보다 난방 장치가 잘 되어 있어서 아주 따뜻한 밤을 지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안데스 산자락에서 보는 밤하늘의 경치는 정말 "죽여줍니다".




저희 일행은 호스텔 주인 아주머니의 호의를 받아서 한쪽에서 고기를 구웠습니다. 객실 옆으로 딸린 고기굽는 곳에서 낮에 사온 쇠고기를 아르헨티나 식으로 구워서 저녁 식사로 하기로 했습니다. 맘씨 좋은 주인 아주머니는 일하는 총각과 처녀를 불러 식당에서 그릇을 사용해서 먹을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었습니다. 그릇과 기물들을 사용하도록 허락해 주고 시중을 다 들도록 해 주더군요.


식사 후에 까바냐의 뒤쪽편으로 위치한 특실을 좀 보여 달라고 해서 올라가 보았습니다. 앞쪽편의 일반 객실에 비해 뒤편의 특실들은 4, 5명의 가족들이 와서 지낼 수 있도록 럭셔리하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 지역에서 많이 나오는 몇 백년된 선인장 나무를 장식으로 들여다 놓았습니다. 입구부터 방문객을 압도하는 멋이 있군요. ㅎㅎㅎ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왼편으로 선인장 나무 장식이 있습니다. 직접 보시면 정말 탐나는 장식이랍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이 까바냐의 홈 페이지를 보시고 싶다면 <여기>를 눌러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희 일행은 일단 까바냐를 잡고 방 3개를 구해서 짐을 내려놓은 다음 52번 국도를 따라 소금 사막까지 가 보기로 했습니다. 말씀드리는 소금 사막은 볼리비아의 우유니가 아닙니다. 분위기는 비슷하지만, 크기는 우유니의 1/5 정도 됩니다. 하지만 크기가 차이를 주는 것은 소금지평선을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 차이 뿐입니다. 사실 소금 평야를 자동차를 타고 달려봐야 끝을 볼 수 없으니 우유니나 아르헨티나 소금 사막이나 거기가 거기입니다. 다음번 포스트나 그 다음 포스트에서 소금 사막의 사진을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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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an 의 라틴 아메리카 이야기
이 블로그는 이과수 이야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에 더해서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가지 이야기를 담게 되었습니다. 남미는 더이상 신비의 땅이 아닙니다. 하지만 여전히 정보가 부족합니다. 이 방에서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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