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까따마르까로 내려가는 길은 구비구비 계곡을끼고 정말 멋진 풍경의 길이었습니다. 역시 큰 형님은 여름에 이 길을 와야 하는데... 라시며 푸념을 하셨는데, 겨울에 이 정도 경치라면 여름은 정말 멋질 거라는 생각에 동감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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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급 커브가 정말 무지무지 많더군요. 큰 형의 말로는 평생 돌릴 핸들을 여기서 다 돌린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 정도로 커브가 많았습니다. 한쪽으로는 낭떨어지인데도 그리 위험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도로가 좋았고, 또 주변의 경치를 보느라 아슬아슬한 부분을 느낄 틈이 없었습니다.



경사도 경사고, 커브도 커브였습니다. 이어지는 도로의 풍경을 좀 보시기 바랍니다. 중간에 전망대에 잠깐 서서 계곡을 바라보기도 했지만, 주로 도로의 풍경이 이어집니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다가 도시가 나올 때가 되었는데, 도로를 달리는 차들이 모두 서 있습니다. 왠 일인가 알아보니 시위대가 국도를 막았다고 하네요. 근데 이 시위대라는 사람들이 하필 다리 앞에서 길을 막았습니다. 여기서 돌아가야 하나요? 알아보다가 도시로 들어가서 비포장 도로로 돌아다니다 다리를 지나서 계속 전진을 합니다.



그렇게 들어간 한 도시의 광장에는 1980년대부터 2000년까지 아르헨티나에서 보았던 모든 중고차는 다 모여있는 듯 합니다. 레나울트 11, 12, 18, Torino와 푸조 504, 405, 404 게다가 포드 Falcon도 있네요. 정말 대단한 중고 자동차 골동품점입니다. ^^



그런데 이렇게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는 한 두 군데가 아니었습니다. 자그마치 세 군데서나 도로를 막았더군요. 게다가 하필 도로를 막은 곳은 하나같이 다리 앞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튼 까따마르까로 가기 위해서 비포장 도로는 물론 진흙탕까지 다리를 건너기 위해 이상한 곳들로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이런 길로 다녔습니다. 이해가 되시지요?



그래도 막판에는 좋은 도로에서 경치 좋은 곳으로 다닐 수 있었습니다. 한 산을 지나가면서 큰 형님은 이곳이 얼마전 아르헨티나 정부를 대항해 게릴라전을 펼치던 반군들의 소굴이었다고 설명해 줍니다. 확실히 박식한 분이시지요?



까따마르까가 가까워 질 무렵에 멀리 산자루를 보면서 산마루에 있는 국도 이야기를 해 줍니다.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있는 국도인데, 포장이 안 되어있는 정도가 아니라 잔디밭이 도로라고 하네요. 그리로 올라가는 길을 보니 정말 까마득합니다. 다음 사진을 보시면 그 길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저 길로 한번 가보고 싶다는 호승심 혹은 호기심이 일었지만,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니기에 그냥 지나치기로 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잔디밭 국도는 어떤지 한번 가 볼 계획을 세워 볼랍니다. ^^




그렇게 그렇게 까따마르까 시내로 들어갑니다. 사실 볼게 별로 없는 도시입니다. 도시도 자그마하고 그냥 그저 그렇습니다. 까따마르까에 좀 특산품은 뭐가 있을까요? 큰 형님은 이곳이 올리브의 집산지라고 설명해 주십니다. 또한 이곳에서 독사의 독을 해독하는 약품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둘 다 경치와는 관련이 없는 것이니 특별히 보여 드릴게 없네요.



까따마르까를 지나쳐 라리오하로 갑니다. 가는 길에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여행이 종반으로 향해 가는군요. ㅎㅎㅎ



라 리오하는 얼마전에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지냈던 사울 메넴의 고향입니다. 물론 라 리오하 시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구요. 메넴은 라 리오하의 주지사를 지내다가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친한파로 알려진 메넴은 현재 부정부패혐의로 이런 저런 안 좋은 일로 연루가 되어 있습니다. 대통령을 낸 곳이라서 그럴까요? 20여년 전에 이곳을 왔을 때는 정말 촌 동네였었는데, 지금은 좀 활기를 띈게 그런대로 괜찮아 보입니다. 일단 저녁을 지내고 낼 아침에 한번 봐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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낄메스 Quilmes 이야기라고 하니까 아마도 아르헨티나 맥주 낄메스 Cerveza Quilmes 를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낄메스는 맥주가 아니라 인디오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낄메스 인디오들, 들어는 보셨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현재 부에노스 아이레스 남쪽에 있는 낄메스 지역의 인디오들인가?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 지역에 인디오들이 있기는 했습니다만, 지금 이야기를 하는 낄메스 인디오들은 아르헨티나 북서쪽 살타 주와 뚜꾸만 주 경계 부근에 살았던 낄메스 인디오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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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어떻게 낄메스 인디오들의 폐허와 마주치게 되었는지를 말씀드리죠. 여행이 종반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다섯째 날 아침이 밝자마자 까파자떼에서 일어나 아침 식사를 하고 나서 남쪽으로 뚜꾸만으로 갔습니다. 아직 아침의 햇살이 비취고 있던 시간, 바깥 온도는 영하 2도를 가리키고 있었지요. 까파자떼로부터 뚜꾸만의 경계 부근까지는 모두 포도밭이었습니다.



황무지처럼 보이는 곳들을 개간해서 포도 농장을 세운 모습은 경제에 눈을 뜬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이전의 황무지가 이제는 포도 농장으로, 그리고 미래에는 포도주 생산지로 탈바꿈을 하게 될 것입니다.



뚜꾸만 주에 들어서서 처음 만나는 곳에 낄메스 인디오들의 유적지에 대한 간판이 서 있었습니다. 돈을 받고 입장을 시키는 관광/유적지의 간판치고는 엉성하기만 한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냥 인디오들의 것이겠거니 하면서 지나치기에는 또 뭐한것이... 아래 있는 ciudadsagradaquilmes@hotmail.com 이라는 이 메일 주소였습니다. 현대 사회를 철저하게 배척한 것도 아니면서 간판은 19세기 모습을 보는 기분이었으니 말입니다.



유적지로 통하는 길은 비포장이었지만 좋았습니다. 아침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전 근대적인 유적지와는 아주 잘 매치가 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런 비포장 도로고 1킬로미터 정도를 갔을 때, 추위에 손을 비비며 한 인디오의 후손이 나타났습니다. 보아하니 이곳이 유적지의 입구인 모양입니다. 1인당 10 페소의 입장료를 받았습니다.



제 손에 쥔 것이 입장권입니다. 인쇄된 입장권은 또 최첨단 인쇄술을 사용했네요. ㅎㅎㅎ



입구 부근에 서 있는 기념비입니다. 2008년에 만들어진 모양이네요. 당연히 1990년대 초반에 이곳에 왔던 저는 낄메스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못한게 당연해 보입니다.



낄메스 인디오들의 유적지입니다. 잘 보시면 산 중턱까지 집터가 있습니다. 젤 끝에는 추장이, 그리고 그 아래쪽으로 신분이 높은 인디오들이 살았고, 아래로 내려오면서 평민들이 살았던 모양입니다. 한때 이 지역에는 20000명에 달하는 인디오들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과장된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닌 모양입니다. 실제로 인디오들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이야기로는 적게 잡아서 2만 명이라고 하니까요. 나중에 전쟁에 지고 나서 포로로 끌려간 인디오들만 수천명에 달한다는 사실은 그 숫자를 반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적지 입구쪽에 있는 선인장들의 모습입니다. 선인장들의 크기는 보통 성인의 서너배가 충분히 됩니다. 선인장의 하나 하나에 인디오들의 모자와 옷을 입혀 적군을 혼란스럽게 했다는 이야기가 농담이 아닌 모양입니다.


낄메스 인디오들은 잉카에 의해서 한 번 정복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잉카는 이들 낄메스 인디오들에게 그들의 선진 문화 즉 축조술이나 관계 수로에 대한 기술과 지식을 전수하면서 개런티를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발전된 지식과 기술을 전수받은 낄메스 인디오들은 이후 언젠가 이곳으로 침범해 들어올 스페인 사람들을 대항해서 싸우며 견딜수 있는 방법을 습지하게 된 듯 합니다.



유적지에는 수원이 없었습니다. 가까운 곳으로 산타 마리아 강이 있어서 유일한 수원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20000여 명이 이곳에서 거주를 하려면 강뿐 아니라 유적지 안쪽으로도 무엇인가 급수가 가능하게 하는 수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쉽게도 그런 흔적이나 그에 대한 정보는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유적지의 집터에서 하나 하나 볼 수 있었던 것은 벽 자체가 요새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벽의 두께는 어림잡아 7, 80센티미터가 되었습니다. 어떤 벽의 두께는 1미터가 넘었습니다. 이 정도 벽이라면 스페인 군의 총알이나 포탄으로도 겹겹이 두른 벽을 깨뜨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넓은 바위 위에는 인디오들이 절구로 썼을 것으로 보이는 구멍들이 많았습니다. 이 곳은 이른바 마을의 여러 여자들이 한꺼번에 일을 했던 장소로 보이네요. 절구처럼 보이는 구멍들이 한 두개가 아니라 십 수개가 한 바위위에 있었거든요.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조금씩 더 시야가 넓어집니다. 이미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던 큰 형과 큰 형님은 아래에서 올라오지 않고, 처음 온 사람들만 위로 올라갔습니다. 꼭대기에서 보면 정말 시야가 트여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겨우 중간 아래쪽에서 보았을 때에도 멀리 산타마리아 강까지 한 눈에 들어왔거든요. 아마 저쯤으로 행군해 오는 스페인의 군사들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전략을 연구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낄메스 인디오와 연합한 2 군데의 인디오 세력은 줄잡아 130년 동안 이곳에서 스페인 군대에게 저항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패배를 당하게 되었을 때, 살아남은 여자들은 뒤쪽의 산을 넘어 도망을 했고, 남자들은 수 천명이 1200킬로미터 떨어진 오늘날의 낄메스 지역까지 도보로 끌려갔습니다. 수 개월에 걸친 이 행군중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은 낄메스 인디오들은 자신들끼리 결의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즉, 여자들은 임신을 하지 않기로, 여자들이 임신을 하면 자결을 하기로, 남자들은 장가를 들지 않기로, 장가를 가더라도 씨를 남기지 않기로 결의를 했고, 최후의 한 사람까지 그 결의를 지켰다고 합니다.


낄메스 인디오와 안데스 지역의 인디오들을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 끌고간 이유가 무엇일까요? 남 아메리카를 정복한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도시의 도로를 건설하는 데 사용되는 석재 기술이 별로 없었던 모양입니다. 현재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거리를 덮고 있는 아스팔트를 살짝 걷어내보면 돌이 깔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와같은 석재를 다루는 데, 안데스의 인디오들은 특별했던 모양입니다. 그 기술자들이 필요했기에 수천명의 인디오들을 포로로 끌고 간 것입니다.



오늘날 낄메스 유적지와 그 인근에는 2010년 기준으로 200여 명의 낄메스 인디오의 후손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 인디오들은 현대 사회의 문명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조상들의 유적을 복원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문자로 역사가 기록되지 않은 민족이다보니 복원에 어려움이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낄메스 인디오들이 가지고 있었던 독특한 주거 방식같은 것들은 몇몇의 고증을 통해 어느정도 복원을 한 모양입니다. 저희가 방문한 이 유적지는 그런 복원 노력의 한 결과일 것입니다.



낄메스 인디오들의 유적지에는 이렇게 한산한 기념품 가게가 있습니다. 큰 형님은 이곳에 만들어진 돌로 된 호텔에서 숙박을 해 본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가능하면 이곳에서 자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이 호텔은 몇 년전에 있었던 어떤 분쟁 때문에 폐쇄가 되어 있습니다. 이 호텔의 폐쇄로 인해 낄메스 인디오들의 유적지는 더더욱 찾는 사람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 호텔이 다시 개장을 하게 된다면, 이곳에서 한번 꼭 숙박을 해 볼 것을 큰 형님으로부터 권고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기회가 된다면 이 호텔에서 꼭 숙박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출발하기 전에 본 간판입니다. 1534년부터 1665년까지 자그마치 131년동안 스페인 정복군에 맞서 저항했다는 간단한 기록의 간판입니다. 개화라는 명목으로 수백년간 자연과 함께 살아온 문명을 파괴했던 16, 17세기의 유럽 강국들이 21, 22세기에는 더더욱 도마에 오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공존 공생하는 길을 택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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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갈로에서 저녁을 잘 보내고 아침에 일어나서 숙박업소에서 제공하는 아침 식사를 즐기러 나왔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아침 식사라는 것은 좀 야박하죠? 밀크들이커피 한 잔에 메디아루나 (크로아쌍이라고도 하죠?) 3개가 전부입니다. 그런데, 숙소에서는 조금 더 야박해서인지(?) 빵을 1인당 하나씩만 주는군요. 어쩔 수 없네요. 길 가다가 하나씩 더 사먹든지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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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 그 메디아루나입니다. 기름이 좌르르 흐르지요? 하나씩만 먹어야 하는 것이라서인지 맛이 꿀맛이더군요. 일단 커피와 빵으로 공복(아주노)을 없앴으니까(데스) 아침은 먹은 셈이겠지요? 제가 중간에 쓴 단어의 의미를 잘 모르신다면, <여기>를 눌러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아침 식사 비교를 좀 읽어 보세요.



그리고는 이제 9번 국도를 이용해서 북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산꼭대기 부근부터 동이 트기 시작했습니다. 이 부근의 산들은 꼭대기에 나무가 별로 없는 민둥산이라서도 그렇지만, 많은 산들의 색이 붉은 색이나 짙은 청녹색, 갈색, 회색, 노란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각의 색채는 함유하고 있는 광물질 때문인데, 예컨대, 붉은 색은 철을 많이 함유하고 있는 산이고, 청녹색은 청동, 회색은 흑연, 노란색은 유황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색채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여행을 해 보면 사실 돈이 널려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언젠가 광산을 가 본 적이 있는데, 광산을 갱도가 있고 갱 속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제가 아주 놀랐습니다. 그냥 산을 한쪽에서부터 부셔서 잔해물을 싣고 가는 것이 광산이더군요. 노천 광산이었는데, 아르헨티나의 많은 광산들이 그렇게 생겼습니다.



정말 산들이 벌겋지요? 아마 전 산들에는 상당한 양의 철광석이 있을 것입니다. 붉은 색을 띄는 이유는 철이 산화해서 그런 색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르헨티나의 광물 자원은 정말이지 무궁무진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는 말이 이해가 갑니다. 아르헨티나는 정말이지 못사는 것이 기적인 나라입니다. ㅎㅎㅎ



살따를 지나쳐 후후이로 가는 길은 잘 포장된 4차선 도로였습니다. 게다가 정말 마음에 드는 것은 통행세를 받는 곳이 별로 없다는 것과, 있더라도 가격이 아주 아주 저렴하다는 거겠지요? 


차가 살따 시를 지나쳐 헤네랄 구에메스를 지나칠 때 큰 형님은 창문을 열고 코카잎을 한 봉 샀습니다. 고산지대에서 필수인 코카잎은 코카인의 원료가 되기는 하지만, 코카인과는 달리 길에서도 구입을 할 수 있습니다. 코카 잎을 입에 물고 있으면 졸음도 오지 않고, 식욕도 없으며 고산병 증세가 완화 됩니다. 따라서 고 지대에 약하신 분들이라면 필히 코카 잎을 준비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고지대에서 문제가 없으신 분들이라면 필요가 없겠지만요. 제 경우는 2003년에 5300mts 까지 올라가 보았는데, 4800mts까지는 문제가 없더군요. 그것도 그렇고, 또 코카잎의 비릿한 맛이 싫어서 이번 여행에는 코카잎을 씹지 않았습니다.



차가 후후이 시내로 들어서니 겨울 옷을 입은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띕니다. 차 안에 설치된 실외 온도계를 보니 영하 2도 군요. 이 정도 날씨면 이과수 사람들은 모두 얼어 죽습니다. ㅎㅎㅎ;;




그래서 옷을 단단히 껴 입고, 두 번째 아침 식사를 하러 바깥으로 나갔습니다. 한 주유소에 딸린 편의점에서 다시 커피와 메디아루나로 아침을 먹었습니다. 오늘은 후후이 주의 북쪽에 있는 4100미터 고지를 넘어 소금들판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든든하게 먹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일행중에 어떤 사람은 오히려 속이 비어야 편하다는 사람도 있군요. 정말이지 사람은 천차만별입니다. ^^



후후이 시내입니다. 그냥 다른 곳들과 비슷비슷 합니다.



그리고 다시 북쪽으로 기수를 틀어 9번 국도를 찾아 나갑니다. 거리의 양편으로는 예전에 전차가 다녔는지 전기 선이 늘어져있는 기둥들이 서 있습니다. 하지만, 오른쪽과 왼쪽으로 자동차들이 주차되어 있는 것을 보니, 또 길을 보니 전차가 더이상은 다니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9번 국도를 찾아서 북쪽으로 올라갑니다. 하늘에는 구름이 한참 걸려 있군요. 이제 고도가 조금씩 올라가면서 한동안 구름층 가까이에서 운행을 하게 됩니다. 저희가 가고 있는 국도 오른쪽으로는 거의 말라버렸지만 폭이 아주 큰 리오 그란데 Rio Grande 라는 강이 구비구비 흘러갑니다. 아마도 눈 녹은 물이 흘러가는 강이겠지만, 눈이 아무리 많이 와도, 아니 아무리 많이 녹아도 강 폭을 채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일부 물이 흘러가는 곳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는 상류로부터 흘러나와 쌓인 수 많은 잡석들이 쌓여 있습니다. 저것도 모두 건축 현장에서 쓸 수 있는 것들이라는 생각을 하니 정말 돈이 쌓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올라가며 찍은 사진을 몇 장 올려봅니다.












정말 구름이 아주 많이 가까워졌지요? GPS 큰 형님은 계속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주며 여행의 흥미를 더 해주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저 고개만 지나면 풍경은 물론 날씨가 변한다며 소개를 해 주셨는데요. 정말 말씀하신 그 고개를 지나자 날씨가 변했습니다. 자욱했던 구름사이로 파란 하늘이 나타나더니 나중에는 구름 한 점이 없는 풍경으로 변하더군요.






점점 밝아지고 있지요? 그 와중에 일행 중 한 명이 뒤를 바라보다가 차를 잠깐 세우라고 해서 차를 세웠습니다. 뒤 쪽의 풍경이 어떠했느냐구요? 다음 사진이 조금 답이 되려나 모르겠네요.



우리가 뚫고 온 구름층은 뒷편의 골짜기 사이에 흐르고 있어서 마치 빙하가 내려오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면 너무 과장이라고 할까요? 아무튼 저희 일행의 눈에는 뒤쪽의 구름층이 파타고니아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빙하의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이제 구름층까지 뚫고 올라왔습니다. 다시 말해 고산이라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저의 몸 상태는 전혀 신호를 주지 않고 있었습니다. 일행들 역시 그렇게 달라진 모습은 없습니다만 조금씩 걸음이 느려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코카잎의 활약은 대단했습니다. 고산증으로 쓰러진 사람은 하나도 없었으니 말이죠. 이제 다음 포스팅에서는 후후이 북쪽의 모습을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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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꾸만 시내는 대도시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특이한 점이 없기 때문에 도시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고, 일단 도시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산 하비에르 San Javier 산(山)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큰 형님의 설명은 이번에도 유용했습니다. 산 하비에르에 올라가면 곳곳에 휴식 공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뚜꾸만 시내를 파노라믹으로 볼 수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사진의 저 앞에 보이는 산 꼭대기로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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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하비에르 산으로 올라가는 주변에는 별장촌 천지입니다. 산쪽으로 갈 수록 저택들의 위용은 더더욱 멋지더군요. 이렇게 공기 좋고 전망 좋은 곳에서 살려면 정말 쩐이 많아야 할 듯 합니다.



식사를 할 수 있는 휴게 공간에 도착해서 나무 사이로 보니 뚜꾸만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이곳부터 위쪽으로 몇 군데서 뚜꾸만 시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들이 있다고 설명하십니다.



참, 소개 안했죠? 우리 7명을 태우고 다니는 큰 형의 기아 카니발입니다. 7명을 태우고 7명의 짐까지 다 싣고는 아주 힘 좋게 돌아다니더군요. 정말이지 한국차 만세입니다. 만세!!!



불을 피우지 말고 쓰레기도 버리지 말고 소음도 내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얌전하게 앉아만 있다 가라는 거군요. 그래서, 전날 한끼를 먹었던 그 컵라면과 아파트에서 만든 밥을 꺼내고 밑반찬을 꺼내 얌전하게 앉아서 먹고 출발합니다. ㅎㅎㅎ



위쪽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구비구비, 정말 끝없이 구불구불 올라갑니다. 길도 좁은데다가 커브가 정말 꼬불꼬불해서 뒤쪽에 탔더라면 멀미를 할 뻔 했는데, 경치는 정말 끝내주더군요. 그렇게 해서 정상 부근까지 차를 몰고 갔습니다. 정상에서는 길이 두 군데로 나 있군요. 한쪽으로는 골프장을 포함하고 있고, 다른 쪽은 골프장하고는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저희는 골프를 치러 온게 아니므로 그냥 다른 쪽으로 내려갑니다. ^^



산 꼭대기에 있는 호텔의 모습입니다. 전망은 장관일 듯 합니다. 큰 형님은 이곳에서 주무셔 보았다고 하네요. 전망은 쓸만하지만 시설은 별루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사진 젤 왼쪽을 보니 증축을 하고 있군요. 아마도 신축을 하고 나면 좀 쓸만해 지려나요? 


이곳에서 우리가 오늘 저녁에 목적지로 삼고 있는 로사리오 데 라 프론떼라 온천에 대해 듣습니다. 현재 온천장이 시설을 보완하고 있는 중이어서 아마도 안 열려 있을 거라는 소식을 듣습니다. 낙심 천만이군요. 하지만 "아마도"라고 하니까, 아마도 열려있지 않을까요? 희망을 가지고 길을 갑니다.



정상 부근에서 바라보는 뚜꾸만의 정경입니다. 



그리고 길가에 많이 열려있는 저 과일들.... 생소하고 첨 보는 것들인데, 참 많기도 합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몇몇 사람들(저를 포함해서)때문에 큰 형이 차를 세우고 달려가 보았습니다. 크기는 제 손 안에 3알 정도 들어갈 정도입니다. 좀 큰 자두 정도 되어 보이는군요.



나무에는 수 없이 많은 가시가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참, 먹음직 스럽게 보이는군요. 여럿이서 모여서 의논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안 먹기로 합의를 봅니다. 첫째, 새들이나 동물이 먹은 흔적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아마도 독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구요. 둘째 만약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이렇게 지천으로 열리게 놓아두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혹시 이 과일이 무엇인지 아시는 분이 계시면 메일 부탁합니다. 아니, 댓글도 괜찮습니다.



아래로 내려가서 9번 국도를 따라 북상하면서 살타 주 Provincia de Salta 로 들어갑니다. 살타 주에는 여러번 왔습니다. 그리고 살타 주의 주도인 살타 Salta 시에서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관광 포인트 하나를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구름으로 가는 기차" 인데 스페인어로는 Tren a las nubes 라고 합니다. 구글의 이미지 창에서 검색해 보시면 됩니다. 최고 높이 4200mts 까지 올라가는 이 기차는 한 번은 타 볼만 합니다. 미리 예약을 하셔야지, 그날 와서 탈 수 없습니다. 아르헨티나를 여행하실 생각이라면, 여행 계획을 세울 때부터 (그러니까 한 6개월 전부터) 미리 예약을 하셔야 합니다. 구름으로 가는 기차가 어떤지 보시고 싶다면 <여기>를 눌러 이미지를 확인 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창 밖의 풍경이 좀 바뀌어 졌습니다. 산맥이 많은 지역이기 때문에 끝없이 늘어선 산들이 눈에 띕니다. 그리고 살타 주의 첫번째 관문인 로사리오 데 라 프론떼라 도시로 들어섭니다. 주유소에서 들은 말로는 온천이 폐쇄되었다고 하네요. 실망이 되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온천장으로 가 봅니다. 



역시나 더군요. ACA의 온천장은 폐쇄되어 있습니다. 이 주변에서 온천을 할 수 있는 곳은 유일하게 온천 호텔 뿐입니다. 투숙객에게 개방하는 온천장은 일반인들에게는 개방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격이 상당히 비싸군요. 그래서 호텔을 (속으로) 욕하면서 나와서 근처의 방갈로로 숙소를 잡았습니다. 아침에 사온 염소 고기를 먹으려면 호텔에 투숙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죠. 아무튼 그래서 방갈로를 좀 싼 가격으로 잡게 되었습니다.



방갈로의 모습입니다. 첫째 건물에 주인 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큰 형님과 큰 형은 이 방갈로의 주인 이전의 주인도 알고 있다고 합니다. 이 방갈로는 이쪽 지역으로 올 때 언제는 들르는 곳이라고 하네요. 지금은 일가족 4명이 새로운 주인이 되어 있는데, 여전히 친절합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2개의 방을 빌려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원래가 시골인데다 온천장이 폐쇄되어서인지 길로 통행하는 차량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한적한 분위기인데다 공기도 좋아 정말 기분좋은 오후 한때를 즐겼습니다.



요즘은 손님이 그리 많지 않다는데, 새로 들어온 우리 일행을 위해 주인 부부의 외동딸인 까를라 Carla 양이 열심히 청소를 하더군요. 그리고 깨끗하게 방을 단장하고 저희 일행을 들였습니다.



이제 저녁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죠? 미리 아침에 사온 숯과 염소 고기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주인집의 도구들을 빌려서 상을 준비하고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고 와인과 또 다른 북쪽의 맥주 살따 Salta 를 맛보며 저녁 시간을 보냈습니다. 정말 괜찮은 이틀째를 보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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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니 구름한점이 없는 깨끗한 날입니다. 날씨가 추워서 오전 기온이 한 자리 숫자였지만, 날씨가 좋은 것을 보니 점심에는 좀 덥겠군요. 아무튼 차림을 차리고 아침을 먹은 다음 자동차에 짐을 싣고 리오 온도 시내를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묵었던 ACA 클럽이 도시 젤 끝자락에 위치한 관계로, 아파트를 나왔더니 "잘 가라" Feliz Viaje 는 표지판이 붙어 있군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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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 온도는 아르헨티나의 유명 온천지대입니다. 땅만 파면 온천수가 나오는 통에 도시 이곳 저곳에는 아침부터 증기가 솟아오르는 곳들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수도물 조차도 온천수를 식혀서 보낸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온천수가 나오는 걸까요? 이 지역 리오 온도에는 조그만 댐과 거대한 호수가 하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댐과 호수를 보기 위해 방향을 잡았습니다.



정말 거대한 호수군요. 깊이는 알 수 없겠지만, 아무튼 깊어 보이는 호수를 보니 더욱 오싹해지면서 추워집니다. 아직 아침이라 그런지 주변의 온도가 상당히 추웠습니다. 그래도 기분을 좋게 하는 광경이군요.



댐 위로 2차선 도로가 있어서 차들이 통행하고 있습니다. 통행에 제한은 없어 보입니다. 도시가 호수를 아래로 두고 반월형으로 형성된 모양입니다. 댐을 통과해서 다른 쪽으로 갔더니 어제 저녁에 통과했던 도시 초입으로 돌아가더군요.



댐에서는 전력을 생산합니다. 하지만 전력 생산을 위한 시설을 보니 겨우 이 동네나 이 주변 촌들에나 전기를 공급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아무튼 주변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발전소가 있다는 것은 이 동네의 전기사정이 그닥 나쁘지 않다는 뜻이 되겠지요?



댐 아래쪽으로 조그마한 마을이 보입니다. 큰 형님(인간 GPS라는)의 설명에 의하면 저곳이 관광객들이 찾는 수공예품 상점들이라고 합니다. 정말, 지나가면서 보니 상당히 큰 공터가 있습니다. 큰 형님의 말씀에 의하면 공터에 수십대의 버스들이 주차를 한다고 합니다. 또한 더 많은 수의 자동차들이 주차를 하며, 모두 저곳에서 생산되는 별 별 종류의 수공예품을 사가지고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는 시간이 있는 것인지, 우리가 지나칠 때에는 한 군데도 연 곳이 없었습니다. T.T



다시 시내로 돌아왔습니다. 큰 형님은 저녁에 먹게 염소 고기를 사가자고 제안하십니다. 저녁에는 로사리오 데 라 프론떼라 Rosario de la Frontera 라는 또 다른 온천지대에서 묵도록 계획했습니다. 그곳의 방갈로가 고기를 굽도록 허용한다면서 오늘 아니면 염소 고기는 먹을 수 없다고 위협을 하시네요. 그래서 리오 온도의 재래 시장으로 차를 몰고 갔습니다.



재래 시장이라고 해서 특정 건물이 아니네요. 상점들이 이곳 저곳에 늘어져있고, 길에도 좌판들이 늘어져 있습니다. 상인들-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아무튼 소상인들-이 자신의 품목을 여기 저기 흩어놓고 팔고 있습니다. 몇몇 경찰이 나와서 길을 통제하기도 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도 합니다. 여기서 보는 현지인들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때깔 좋은 백인들이 아니네요. 메스티조 Mestizo 임이 분명한 현지인들은 참 친절해 보입니다. 동양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필자에게 다정하게 말을 붙이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제가 스페인어를 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들 놀라더군요. ㅎㅎㅎ



일행들은 슈퍼마켙으로 들어갔습니다. 염소 고기를 10kg 이나 샀습니다. 정확히 두 마리를 샀다고 하네요. 10kg 이라는 것이 많아 보였는데, 저녁에 식사를 하면서 보니 그게 다 뱃속으로 들어가더군요. 정말 허망했습니다. ㅋㅋㅋ;;



길거리에서 늘어놓고 파는 상품들입니다.



각종 음식에 들어가는 조미료들도 팔고 있군요.



다시 리오 온도 광장을 지나 엊저녁에 묵었던 숙소를 지나 9번 국도를 따라 뚜꾸만 Provincia de Tucuman 으로 들어갑니다. 뚜꾸만 주는 아르헨티나 북서쪽에서 가장 큰 도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뚜꾸만 시 San Miguel de Tucuman 죠. 아르헨티나에서 5번째 안에 들어가는 대도시 뚜꾸만까지 가는 길 역시 단순합니다.



가는 길에 가장 많은 것이 바로 사탕 수수 밭입니다. 이웃 나라 브라질에서는 사탕 수수로 설탕도 만들지만 공업용 알코홀도 생산합니다. 그 알코홀로 운행을 하는 자동차들이 많지요. 아르헨티나에서는 알코홀 자동차는 없습니다. 따라서 이곳 사탕 수수는 온전히 설탕과 비료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뚜꾸만까지 가는 길의 주변으로는 설탕 제조 시설이 군데 군데 눈에 띄었습니다.



그리고 뚜꾸만 시에 도착했을 때,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대로 변으로 차들을 닦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이게 뭘까요?



큰 형님과 큰 형(제 친형입니다)의 설명에 의하면 뚜꾸만 시의 외곽 진입로에서는 이런 광경을 흔하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뚜꾸만의 세차 방법이라는 거죠. 수도 없이 늘어서있는 세차장을 보면서 특이하다고 생각한게 저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신기하지 않으신가요? 아르헨티나 북서쪽 뚜꾸만에 와서 직접 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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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탈레자 Fortaleza로 이주를 하기 전에 부에노스 아이레스 Buenos Aires에 계시는 어머니를 방문하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 잠깐을 이용해서 아르헨티나 북서쪽으로 1주일간 여행을 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와이프가 아닌, 친구들과 함께 한 여행을 이제 몇번의 포스트를 통해 소개하려고 합니다.


아르헨티나 북서쪽의 풍경은 정말 장관입니다. 이런 풍경이 북미나 유럽에 있었다면, 아마 틀림없이 "죽기전에 꼭 가봐야 할 00곳"등에 등재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잘 알려진 곳이라면, 틀림없이 특별 관광 코스로 만들어졌을 곳들입니다. 하지만, 남미이다보니... 게다가 관광에 대해서는 생각도 잘 안하는 아르헨티나의 땅이다보니 세계인들에게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더더욱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들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가능하면 많은 사진을 찍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진들 중 몇몇 사진들을 이 블로그를 통해서 공개하겠습니다. 저는 이 지역으로 1990년 이전에, 그리고 2003년에 가 보았습니다. 이번에 다시 이곳들을 방문할 수 있게 되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먼저 이 포스트에서는 일정과 루트를 기록해 보았습니다. 총 7일동안 돌아 다녔는데, 실제로는 둘째날부터 6째날까지 관광을 한 셈이네요. 첫째날과 마지막 날에는 오고 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차 안에서 주로 사진을 찍었고, 그래서 도로 사진이 젤 많습니다.


첫째 날에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출발해서 산타페 Santa Fe 주의 도시이며 아르헨티나 제 2의 도시라는 로사리오 Rosario까지 갔습니다. 그곳에서 34번 국도를 따라 산티아고 델 에스떼로 Santiago del Estero주의 주도이며 주명과 같은 이름의 도시를 통과해서 뚜꾸만 Tucuman 주의 변방이자 유명한 온천 지대인 리오 온도 Rio Hondo까지 가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지도에서 분홍색 루트입니다)


둘째 날에는 뚜꾸만의 리오 온도를 출발해서 9번 국도를 따라 뚜꾸만을 거쳐 로사리오 데 라 프론떼라 Rosario de la Frontera 라는 온천지대로 이동을 했습니다. 미리 뚜꾸만의 리오 온도에서 염소 고기를 왕창 샀는데, 저녁에 그것을 숙소에서 구워 먹으며 아주 좋은 저녁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온천은 즐기지 못했습니다. ㅎㅎㅎ (지도에서 녹색 부분입니다)


셋째 날에는 뚜꾸만의 리오 온도를 출발해서 9번 국도를 따라 후후이 Jujuy 주의 주도인 산 살바도르 데 후후이 San Salvador de Jujuy에 이르른 다음 북쪽으로 더욱 올라가서 뿌르마마르까 Purmamarca라는 곳에서 숙소를 정한 뒤, 52번 지방도로를 통해 소금 사막이 있는 살리나스 그란데스 Salinas Grandes를 돌아다녔습니다. (지도에서 주황색 부분입니다)


넷째 날에는 뿌르마마르까를 출발해서 9번 국도를 따라 살타 Salta 주의 주도인 살따를 거쳐 68번 국도를 따라 살따 주의 최 남단 마을인 까파자떼 Cafayate까지 이르는데, 그 중간에 따피 델 바제 Tafi del Valle 라는 관광지와 레온 무에르떼 산맥 Sierra del Leon Muerte 을 따라 있는 관광지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지도에서 파랑색 부분입니다)


다섯째 날, 아침에 기온이 아주 쌀쌀하더군요. 다행히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여서 오후에는 아주 더웠습니다만, 아무튼 까파자떼를 출발해서 40번 국도를 따라 남하해서 까따마르까 Catamarca와 라 리오하 La Rioja주의 주도들을 돌아다녔습니다. 그 사이 낄메스 Quilmes 인디오들의 유적지와 몇 군데 산맥을 넘어가면서 멋진 구경을 했습니다. (지도에서 빨강색 부분입니다)


여섯째 날은 라리오하 주와 산 후안 주의 경계 부근에 있는 딸람빠자 국립공원 Parque Nacional de Talampaya 을 방문했습니다. 이 포스트 시리즈 중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하게 될 딸람빠자 국립공원의 사진을 기대해 보셔도 좋을 것입니다. 딸람빠자 국립공원을 방문 한 뒤, 저희 일행은 150번 국도와 38번 국도를 통해 차미칼 Chamical 이라는 곳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여행의 일정 중에서 최고로 떨어진 숙박업소였는데, 아무튼 그곳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지도에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일곱째 날, 돌아오는 날에는 아침 일찍 출발한 관계로 시간이 좀 남더군요. 그래서 직접 꼬르도바 Cordoba를 통과해서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오는 대신에 꼬르도바 주의 비쟈 벨그라노 Villa Belgrano라는 곳을 들러서 독일식 소세지로 점심을 먹고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돌아왔습니다. 덕분에 아주 비싼 벌금을 물어야 했고, 또 길을 제대로 못 찾아서 헤매기도 했고, 저녁에는 아주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아르헨티나의 정통 아사도를 먹기도 했습니다. 아마 이 포스트 시리즈가 아르헨티나를 여행하시는 분들에게 재밌는 것들을 많이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도의 마지막 연두색 부분입니다.)


우리 일행은 총 7명이었습니다. 파라과이에서 온 친구 두 명과, 아르헨티나의 친구 한 명, 저하고, 베테랑 운전사인 큰 형, 그리고 식품을 담당했던 큰 형의 친구, 그리고 인간 GPS라 불리는 70대의 큰 형 한분이 참여를 했습니다. 자 이제부터 포스트, 들어갑니다~!!!


포스트가 재밌다고 생각하시면 추천 한 번, 그리고 댓글도 한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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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an 의 라틴 아메리카 이야기
이 블로그는 이과수 이야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에 더해서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가지 이야기를 담게 되었습니다. 남미는 더이상 신비의 땅이 아닙니다. 하지만 여전히 정보가 부족합니다. 이 방에서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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